[대구/경북]경북 실업高 “신입생 좀 보내주세요”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7시 21분


“한명이라도 좋으니 제발 우리학교로 보내주세요.”

경북 포항시에 있는 공업계 고교에서 15년째 근무하는 정모 교사(46)는 출근을 아예 집 근처 중학교로 하고 있다. 다음달 초 시작되는 신입생 원서접수를 앞두고 학생모집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갈수록 줄어드는 입학생을 확보하느라 지난 몇 년동안 내가 외판원인가 하는 생각에 젖기 일쑤였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풍경은 비단 정 교사뿐이 아니다. 중학교 교사들은 “홍보팜플릿을 잔뜩 들고 학교를 찾아오는 실업고 교사들의 발길이 종일 이어진다”며 “학생을 보내 달라고 하소연 하는 교사들을 보면 학생이 물건처럼 느껴져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11월부터 시작되는 농업 공업 상업 해양수산 등 실업계 고교 신입생 원서접수를 앞두고 중학생을 한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실업계 고교는 학교홍보를 넘어 중학교에 식사비 명목으로 돈까지 건네는 것으로 알려져 ‘학생을 사고 파는’ 비교육적 행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큰 도시는 사정이 나은편이라 현재까지 정원미달 현상은 없지만 농어촌 지역 실업고의 경우 학생유치전은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경기도에 이어 실업고 수가 두 번째로 많은 경북의 경우 최근 3년동안 70여개 실업고의 평균경쟁률은 0.8대 1. 2000년에는 75개교에서 1만 2200명을 모집했으나 겨우 9100명만 지원했으며, 지난해는 모집정원을 9000여명으로 줄였으나 지원자 수가 7800명에 그쳤다.

다음달 21일부터 접수하는 내년도 전형에는 학교수와 정원이 69개교 8600명으로 또 줄었다. 전국의 실업계 고교도 2000년 764개교에서 지난 해는 741곳으로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중학교 관계자들에게 “학생을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봉투를 건넸다는 실업고 교사들은 “교사끼리 돈봉투를 주고받는 것이 서글퍼지만 다른 학교들도 그렇게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학생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학교존립이 위태롭다는 우려가 팽배해 교무실이 활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시·도 교육청은 실업계 고교에 학생유치를 위한 과열홍보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고 있을 뿐 뾰족한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경북교육청 윤영동(尹永東) 교육국장은 “학생유치활동이 과열되지 않도록 당부하지만 현장사정은 그렇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소수 실업계 고교를 전문화시켜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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