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직장인들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25분


“부모님의 가게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에 다니는 김윤호씨(32·서울 마포구 도화동)는 요즘 강원 강릉시에 사는 부모님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주말 김씨는 강릉시 전체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고향에 연락했지만 전화가 불통돼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사흘간 계속되자 김씨는 강릉행을 결심했지만 회사 일이 바빠 그럴 수도 없었다. 2일 오후 간신히 부모님과 연락이 됐지만 김씨는 부모님의 가게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태풍은 고향을 떠나온 직장인들의 마음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직장인들은 여름 휴가도 이미 다녀온 터라 따로 휴가를 내기도 어려워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실정. 시간이 날 때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회사원 이무형씨(33)는 이번 태풍으로 경북 김천시 대덕면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와 연락이 끊어지자 지난달 31일부터 사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이씨는 고향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에 근무하는 선배를 통해 어머니가 부상자나 사망자 명단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미덥지 않아 김천 인근에 살고 있는 동생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이씨는 2일 끊어진 도로를 따라 5시간이나 걸어서 집에 찾아간 동생에게서 어머니가 안전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다.

수해 지역의 묘지가 상당수 유실돼 추석 귀성을 앞두고 애를 태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강릉이 고향인 회사원 최형규씨(31·서울 노원구 중계동)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산소가 무사한지 모르겠다”며 “묘지의 대부분이 휩쓸려 갔다는데 확인할 길이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 고향에 내려가 물에 잠긴 집안의 복구작업을 도울 생각이다.

고추 주산지인 충북 음성이 고향인 회사원 이재수씨(32·서울 중구 회현동)은 고향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번 태풍에 고추가 반이나 쓰러졌고 수확을 앞둔 배도 절반 이상 떨어졌다.

이씨는 “일손이 모자라 수해 뒤처리를 하느라 고생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가시방석 같다”며 “걱정을 떨쳐 버리고 일에 집중해 보려고 하지만 어렵다”고 토로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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