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자녀교육 뇌에서 출발하자<下>"학습장애도 병"

  • 입력 2002년 9월 1일 17시 41분


학습장애 증세를 보이는 한 어린이가 병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통한 학습치료를 받고 있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학습장애 증세를 보이는 한 어린이가 병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통한 학습치료를 받고 있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엄마, 받아쓰기 시험에서 70점 받았어요.”

주부 김모씨(36·서울 광진구 자양동)는 얼마전 학교에서 돌아온 딸(10)의 자신감 넘치는 소리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딸의 받아쓰기 점수는 평균 10점.

지능지수는 다른 아이에 비해 우수한데도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해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항상 불안해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은 불안장애가 동반된 학습장애.

1년여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전문 상담을 받은 결과 딸은 이제 보통 아이와 다름없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생 김모군(9·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은 주의력결핍증이 동반된 학습장애아. 해외에 부모와 함께 머문 적이 있어 또래에 비해 영어 구사력은 뛰어나지만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 늘 풀이 죽어있던 김군을 데리고 어머니는 최근 병원을 찾았다. 김군은 받아쓰기 검사를 하는 도중에도 서양장기의 말 그림을 그리는 등 주의가 산만했다.

학습장애아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이들 학습장애아는 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와 어울리지 못해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쉽다.

전문의들은 “과거에 비해 학습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자녀에게 쏟는 관심이 커지면서 학습장애가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종류와 증상〓미국의 경우 학습장애를 겪는 사람은 인구의 약 4%. 국내에는 아직까지 학습장애아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의들은 단편적인 조사결과를 토대로 초등학교 3, 4학년의 약 3.8%가 학습장애의 일종인 읽기장애 증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학습장애는 크게 읽기와 쓰기, 셈하기(산수) 장애로 구분된다. 각각의 능력이 연령이나 지능지수, 교육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나타나면 학습장애가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난독증(難讀症)으로 불리는 읽기장애 환자가 가장 많다. 글자나 단어를 빼고 읽거나 더듬거리고, 능숙하게 읽더라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며 ‘너구리’를 ‘리구너’로 읽는 등 증세가 다양하다.

과거에는 보통 1년 이상 교육을 받은 초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 등을 조사해 학습장애 진단을 내렸으나 최근에는 조기교육 열풍으로 진단연령이 무의미해졌다.

효과적인 진단도구가 없는 것도 문제. 증세가 모호해 정확한 진단도 쉽지 않다. 현재 신경정신과에서는 지능검사와 기초학습검사를 포함한 인지기능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원인〓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의들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병’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난독증 환자의 뇌를 찍은 사진을 보면 읽기능력을 결정하는 좌뇌 뒷부분의 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밖에 임신 중 흡연이나 약물 복용 등으로 태아의 뇌가 손상받거나 자라는 과정에서 좋지 못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학습장애를 병으로 보지 않고 아이를 나무라기만 하는 부모가 많다는 것.

대개 “너는 다른 과목은 잘하는데 유독 쓰기만 못하니?” “아이큐(IQ)는 좋은데 왜 덧셈과 뺄셈을 못하니?”라며 아이를 구박한다.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아이는 이 때문에 학습장애 말고도 우울증과 불안감, 좌절감 등 증세를 동반한다. 또 의사를 표현하거나 남의 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표현언어장애나 주의가 산만하고 한 가지 일에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함께 앓는 아동도 많다.

▽치료〓동반 증세가 많은 탓에 아동이 가진 모든 증상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합병증 치료 없이는 학습장애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심한 아동에게는 항우울제, 주의가 산만한 아동에게는 집중력 개선제 등을 처방한다. 이때 많은 학부모는 “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이면서까지 치료할 뜻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시력이 나쁜 아이가 안경을 쓰지 않고 공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청소년기까지 뇌신경은 계속해서 발달하기 때문에 보조 치료제로 약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합병증 치료와 함께 정신치료, 학습치료 등 본격적인 장애 치료를 받게된다. 학습치료는 아동의 증상에 따른 ‘맞춤 교육’. 정신치료는 학습동기를 찾고 자존심을 회복하며 자신의 장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치료. 환자 개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모가 좌절하지 않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도움말〓이수경 분당 소운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전성일 소아청소년 클리닉원장, 김원 닥터헬프 이사)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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