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아름다운 기부’

  • 입력 2002년 5월 14일 18시 11분


자원봉사자와 학생들이 강사인 연극배우 홍정혜씨(맨 오른쪽)의 지도로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와 학생들이 강사인 연극배우 홍정혜씨(맨 오른쪽)의 지도로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자, 앞에 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따라서 ‘거울놀이’를 해봅시다. 행동 하나하나를 꼼꼼히 관찰해 보세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도시형 대안학교인 '꿈틀학교'(명예교장 최철호·전 서울 용문고 교장)의 연극 수업시간. 중고교를 중퇴한 청소년 2명은 연극을 통해 자신과 상대방을 탐구하는 수업이 생소한 지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서로의 몸짓을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연극수업 강사로 나선 연극배우 홍정혜씨(39·여)는 "학생들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세대'인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50여명은 정규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교실 2개, 교무실, 식당 등을 갖춘 30여평 규모의 꿈틀학교를 설립했다.

13일 문을 연 꿈틀학교는 운동장도 없고 정식 학력도 인정받지 못하지만 정부 지원이나 교육 운동가들의 도움 없이 평범한 사회인들이 뜻을 모아 세운 학교라는 점에서 '아름다운 기부문화'의 실천 사례로 꼽힌다.

꿈틀학교는 지난해 12월 김대희 법무법인 대륙 대표, 백경호 주은투자신탁 대표, 오경훈 MBC PD, 허건 에이엠에너지 대표 등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학생들을 위해 뭔가 일을 해보자"며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중퇴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 준비모임'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매월 1만∼50만원까지 후원금을 내거나 전문성을 살려 봉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작은 정성이 모여 임대비 등 설립비용 5000만원과 월 후원금 600만원도 마련, 학생당 수업료를 월 2만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학생 정원은 20명이지만 현재는 3명 뿐.

교육과정은 4학기 2년제로 운영되며 국어 영어 수학 등 기초교과는 물론 현장실습, 직업체험, 연극 미술 등 감성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상근교사 4명과 자원봉사자들이 오전 10시부터 90분씩 3교시 수업을 진행한다.

최 명예교장은 매주 수요일엔 경기 하남시 자신의 집에서 학생들과 텃밭을 가꾸고 거문고 연주 등 국악을 지도하기로 했다. 젊은 사진전문가 그룹인 '1019 사진작가모임'과 컴퓨터 판매점을 운영하는 신우섭씨(41)는 이론과 실기교육은 물론 현장체험 장소까지 제공한다. 학생들의 점심은 애린야학모임 회원들이 번갈아가며 맡기로 했다.

서울정형외과 안태원 원장은 무료진료와 건강진단을 담당하는 '양호교사'가 됐다. 연세대 이강엽 교수와 청주교대 정재찬 교수는 국어, 수학 등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이밖에 이웅렬 코오롱 회장, 문석현 아트박스 사장, 김상범 이수화학 회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최형인 서울대 교수, 김홍선 시큐어소프트 대표, 소근 노무라증권 이사 등도 준비모임에 참여해 현재 회원 수는 80여명으로 늘었다.

준비모임 대표인 백경호 주은투자신탁 대표(40)는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한 386세대가 기부문화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대안학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후원 및 자원봉사, 입학 문의는 02-743-1319, 3259

박용기자 parky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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