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용/제자를 신고하라고요?

  • 입력 2002년 3월 4일 18시 28분


“새학기 수업준비와 학생 얼굴 익히기도 바쁜 마당에 교사가 전학 온 제자 집에 찾아가 범죄인을 다루듯 ‘심문’까지 하라니 말이 됩니까.”

서울 강남지역 고교에 전학하려는 학부모들이 며칠씩 시교육청 앞에서 ‘밤샘 줄서기’를 하는 과열 현상이 빚어지자 서울시교육청은 4일부터 교사 가정방문을 통해 위장전입자를 찾아내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얼굴도 모르는 낯선 제자에게 사랑과 믿음보다는 ‘감시’의 눈초리로 첫 인사를 하도록 하는 교육행정은 너무 비교육적”이라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서울의 모 고교 교사 K씨(33)는 “위장전입 학생을 찾아내도 제자를 학교에서 쫓아내기가 쉽지 않다”며 “교육정책 잘못으로 인한 ‘불’을 끄려고 사제간의 관계까지 왜곡시켜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교사는 “언제는 촌지수수를 우려해 교사의 가정방문을 금지하더니 이제는 학생감시에 교사를 동원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가정방문은 제자의 집을 방문해 가정형편과 교육 환경을 살피고 학교와 가정의 유대를 돈독히 하려는 교육활동의 일환이었지만 촌지수수 등을 우려해 90년대부터 사실상 사라졌다.

동사무소가 협조하지 않아 할 수 없이 교사들이 위장전입자 적발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도 간단치 않다. 교사는 단속 권한이 없어 서류 확인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바보가 아니면 들키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돈다. 지난해 단속 실적이 168명에 불과한 것을 보면 위장전입자 단속은 ‘엄포용 카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현대판 ‘맹모(孟母)’들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바로잡겠다는 교육당국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수단’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사가 위장전입자 색출에 동원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교육적인가’하는 의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용 사회1부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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