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문화원 ‘인천에서 시작된 것들’ 36개 선정

  • 입력 2002년 1월 29일 06시 59분


‘인∼천의 성냥공장/성냥공장 아가씨∼’

30대 이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재미삼아 흥얼거려 봤음직한 노래 가사처럼 인천은 우리나라 성냥공장의 최초 발생지이고 성냥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인천에 성냥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개항 후 3년째인 1886년.

외국인들이 주도했지만 값싼 일본 성냥의 범람으로 곧 실패했다.

이후 1917년 인천시 금곡동에 조선인촌(燐寸·성냥)주식회사가들어서면서성냥산업이번창해‘인천 하면 성냥’할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장작불로 밥을 짓고 부싯돌로 등잔불을 붙이던 19세기 말, 성냥은 비누와 더불어 서민 생활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서구문물의 대명사였다.

당시 이 회사에선 남녀 직공 500명이 ‘우록표’(羽鹿票) ‘쌍원표’(雙猿票) 등의 성냥 제품을 연간 7만 상자를 생산, 전국 수요량의 3분의 1 이상을 공급했다.

인천시내 대다수의 가정이 성냥갑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에 종사할 만큼 성냥산업이 번성해 전국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인천향토문화연구소 최근식(崔根植·44) 소장은 “개항 이후 인천은 석유 등 해외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창구인데다 전력사정이 풍부해 성냥공장 등 생활용품 공장이 많이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냥공장이 사라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인천 남동공단에 전국 업체의 70%에 달하는 31개 사의 라이터 공장이 ‘성냥산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인천문화원은 최근 인천의 고유 민속에 관한 사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를 내놓았다.

내년이면 개항 120주년을 맞는 인천의 ‘정체성 찾기’ 작업의 일환으로 출간한 향토사료조사 제5집 ‘인천의 민속생활’의 부록 내용으로 ‘인천에서 시작된 것들’을 정리해놓고 있다.

모두 36개 항목에 이르는 이 자료에 따르면 인천에는 ‘성냥공장’처럼 ‘최초’가 적지않다.

‘인천에서 시작된 것’은 대불호텔(1899년) 세창양행 사옥(1884년) 자유공원(1888) 인천기상대(1899) 등 서구식 건축물에서부터 자장면 쫄면 등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급속한 산업발전과 궤를 같이 한 ‘최초’도많다.경인고속도로(1968년)인천항갑문식도크(1974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개항과 산업화의 산증거인데 대부분 잊혀져 가고 있다.

특히 일부 건축물은 낡았거나 제국주의의 부산물이라는 이유로 소유자가 개축이나 철거를 추진하고 있어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제 1892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현 영화초교)은 철거 위기에 몰렸다가 지난해 4월 인천시 유형문화재 39호로 지정되면서 기사회생했다.

현재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은 1924년 완공된 인천우체국 등 7개 정도.

시는 앞으로 50년 이상된 건물 가운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을 조사해 2,3곳을 추가로 지정할 방침이다.

인천문화원 김동순(金東淳·80) 원장은 “개항 이후의 역사는 좋든 싫든 인정해야 할 실체”라며 “인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를 오늘의 잣대로 재는 선입견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가 수록된 ‘인천의 생활민속’ 책자는 인천문화원에 문의하면 구할 수 있다. 032-761-2778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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