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 前차관 영장심사 안팎 "청와대 사무실서도 수뢰" 공방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49분


22일 서울지법 318호 법정에서 70분 동안 열린 신광옥(辛光玉)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수사검사와 신 전 차관의 공방과 함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직무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신 전 차관은 영장이 발부되는 순간에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여당의 동향과 민심 파악을 위해 최택곤(崔澤坤)씨를 만났을 뿐”이라며 최씨가 6차례에 걸쳐 1800만원을 건넸다는 장소와 시간, 정황 등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최씨가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돈봉투를 넣어줬다는 수사기록에 대해 신 전 차관은 “주머니에 대통령보고용으로 만든 기밀장부와 수첩 등을 항상 넣고 잠그고 다녔기 때문에 누가 봉투를 넣어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전 차관은 한주한(韓周翰) 영장전담 판사를 향해 “판사가 봐도 깜짝 놀랄 비밀정보들이 적혀 있다”며 코트에서 지갑과 수첩 등을 꺼내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해 5월 초 서울 P호텔 철판구이식당에서 돈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신 전 차관은 “사람이 북적대고 사직동팀에 내사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최씨가 곧바로 내사 무마를 청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주임 검사인 서울지검 홍만표(洪萬杓) 부부장이 “식당은 칸막이로 가려져 있다”며 정황을 구체적으로 밝혀나가자 신 전 차관은 “요리사가 직접 테이블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신 전 차관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600만원을 받았다는 공방이 이어지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뭐든지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어서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일했는데 어떻게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최씨가 자신을 이 사건에 끌어들이기 위한 ‘물귀신 작전’을 쓰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어떻게 이런 일이…”를 연발하며 흐느끼기도 했다.

그는 “최씨가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아서 만나지 않았고 전화가 와도 바꿔주지 말라고 비서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홍 검사는 “제3자가 보더라도 혐의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수사를 했으니 기록을 믿어 달라”고 재판부에 주문했다.

한주한(韓周翰) 영장전담 판사한 판사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법무부 차관 출신을 구속하는 사안인지라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영장 발부까지 5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고심을 거듭했다. 한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노 코멘트’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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