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응원제 자리잡기 밤샘…1500여명 교내 1.5km 행렬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26분


10일 오전 1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노천극장 앞에 난데없이 학생들이 1.5㎞ 가량 길게 줄을 서 있었다. 1500명 정도였다. 비닐장판이나 스티로폼을 깔고 앉아 있거나 담요 침낭 등을 덮어쓰고 있기도 했다. 긴 소파에 앉아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날 오후 5시에 열리는 이 대학 응원제 ‘아카라카를 온누리에’ 행사 때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줄이었다.

맨 앞에 서 있던 양병오군(19·정보산업과 2년)은 “9일 오전 11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며 “작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유난스럽다”며 신기해했다. 법학과 3학년 박경진씨(21·여)는 “점심은 자장면, 저녁은 피자를 시켜 먹었다”며 “맨 앞쪽 줄로 배달해 달라고 주문했더니 배달원이 쏜살같이 달려왔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굉음소리를 내며 밤 교정을 가로지르던 인근 중국집 배달원 이모씨(28)는 학생들을 향해 “오늘은 24시간 영업이니까 전화번호 기억하고 주문하세요”라면서 즉석광고를 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왜 한밤중의 줄서기에 열을 올릴까.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목마름의 표출일까.

9일 정오경부터 줄을 선 사회과학계열 1학년 권혜원양(19)은 “이 행사에 초청되는 연예인 때문이 아니다. 공연에 누가 나오는지는 관심이 없다”며 “밤을 새워가며 친구들하고 줄을 서고 이야기하는 이런 문화 자체가 즐겁다. 고생이 아니라 놀이다”고 말했다.

인스턴트 튀김 닭고기와 캔맥주를 놓고 친구들과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던 공학계열의 한 학생은 “점점 개인주의화 이기주의화하는 학교생활에서 이렇게 밤을 함께 지새며 서로의 얘기를 나누기는 처음”이라며 재미있어 했다.

밤 12시경부터는 여기저기 지원팀까지 등장했다. 비닐장판 위에서 게임을 하며 줄을 지키던 사회과학계열 1학년 ‘밤샘팀’ 학생들에게 ‘지원팀’ 학생들이 떡볶이, 어묵, 튀김 등을 사들고 왔다. 주로 학교주변 하숙생들로 구성됐다는 지원팀은 밤샘팀에 두꺼운 옷과 담요 등도 제공했다.

오전 1시를 넘어서자 추위를 피하기 위해 대형텐트까지 쳐 놓고 버너와 코펠로 라면을 끓이고 삼겹살까지 구워먹는 모습도 보였다. 한 학생은 “요즘 대학생들은 계열로 입학하는 학부제 세대이기 때문에 소속감이 없어 선후배간 모임도 흔치 않다. 사제간의 정도 더 메말라졌다”며 “오늘 동아리선배가 모처럼 교정에서 밤을 새며 이야기하자고 해 흔쾌히 따라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모처럼 선후배끼리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밤새 털어놓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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