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전개발 맞서 주민들 '땅사기운동' 100평 매입

  • 입력 2001년 4월 5일 19시 11분


식목일인 5일 서울에 사는 주부 고재경씨(38)는 땅 한 평과 한 그루 나무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대지산 녹지가 무참히 사라지면 저금통을 깨 땅 한 평을 산 아이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꿈의 동산으로 가꾸겠다고 다짐했는데….”

한국판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주민들이 땅을 매입한 뒤 개발하지 않고 보존하는 운동)의 시초로 평가되는 경기 용인시 수지읍 죽전리 ‘대지산 땅 1평 사기 운동’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대지산 땅 1평 사기 운동은 토지공사의 죽전지구 택지개발 사업에 맞서 이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인 환경정의시민연대 회원 등 256명이 2000만원을 모금, 지난해 11월 대지산 중턱의 땅 100평을 구입한 ‘시민 저항’의 산물. <본보 2000년11월15일자 A27면 참조>

그러나 이 일대에 택지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토공은 사업을 늦출 수 없다며 두달전 이 땅을 강제 수용했다.

토공은 지난해 12월 건설교통부 산하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죽전 사업 자체가 갖는 공익성과 시급성을 고려할 때 빨리 수용하는 게 좋겠다”며 ‘재결신청서’를 냈고 위원회가 토지를 수용해도 좋다는 결정을 내리자 올 2월2일부터 수용 조치에 들어갔다.

토공은 대지산 땅 100평을 포함, 이 일대의 토지 등기를 토공으로 이전하고 평당 20만∼30만원의 돈을 찾아가라는 ‘공탁 공지서’를 각 소유주에게 보냈다.

그러나 ‘소액지주(地主)’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7일에는 대지산 숲가꾸기 및 나무심기 행사도 벌일 예정이다. 소액지주들과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이미 2일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 자체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출하고 4일 감사원에 대지산 환경영향평가의 절차와 내용이 잘못됐다는 시민감사를 청구해 놓은 상태다.

이들은 또 일본 도쿄(東京)의 녹지훼손을 우려한 환경 애니메이션 영화 ‘토토로의 숲’ 상영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의 20대 여성 환경운동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이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삼나무 원시림 지대에 있는 고목을 베어버리려는 퍼시픽 목재회사에 맞서 97년 12월부터 737일 동안 지상 52m의 나무 위에서 단독으로 기거하며 ‘항복’을 받아낸 사례도 참작하고 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오성규(吳成圭)정책실장은 “다음주 중 ‘죽전지구 택지개발 사업 실시계획 승인 고시 처분 취소소송’과 ‘토지 강제 수용 취소 처분소송’을 제기하고 제2의 ‘대지산 땅 1평 사기 운동’과 소송비 모금운동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토공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토공은 특히 “대지산 숲 가꾸기 및 식목행사는 택지개발촉진법 위반”이라며 “이를 강행할 경우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라고 밝혀 충돌도 예상된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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