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금고 불법대출]진승현, 검찰수배 따돌리고 전국 활보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사업경력 2년 만에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부상. 그러나 열린금고 불법대출, 한스종금 외자유치 사기 및 주가조작 의혹까지.’

27세의 청년 사업가 진승현(陳承鉉) MCI 코리아 대표가 걸어온 드라마틱한 ‘사업 역정’이다.

진씨는 98년말 벤처투자업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정작 진씨의 개인적인 면모는 별로 드러난 것이 없다. 한스종금을 집중 검사한 금융감독원 종금 관련 간부는 24일 “검사과정에서 ‘27세 기업가’에 대해 파악하려고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진씨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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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가 마지막으로 공을 들여 인수를 추진했던 한스종금의 한 직원은 “세련된 옷차림으로 가끔씩 나타났지만 사장을 임명하는 등 사실상 주인처럼 행세했다”고 말했다.

진씨는 ‘어른’들의 사업관행도 빠르게 익혀갔다. 서울지검은 24일 “진씨가 자신이 임명한 한스종금 신인철 사장(구속 중)에게 로비자금 20억원을 건넨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씨의 사업에는 P고 총동창회장인 아버지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진씨 가족을 잘 아는 C씨는 24일 “육상선수 출신인 아버지가 워낙 발이 넓고 수완이 좋아 승현이의 사업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가 넘는 거구에 호방한 성격을 지닌 진씨는 아버지가 소개한 서울 명동의 전주(錢主)들과 ‘사우나 사교’를 통해 사귀어갔다. ‘아버지 친구’들이 투자한 돈은 진씨가 거액의 연봉으로 영입한 펀드매니저들이 98년말 당시 무명에 가깝던 새롬기술,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식에 투자하면서 수백배씩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코스닥 ‘대박’이 가져다 준 돈으로 진씨는 M&A를 거듭하며 9개의 계열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진씨의 고려대 동기들은 진씨의 ‘갑작스러운 휴학 후 해외생활’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에 따른 가족들의 생이별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씨는 평소에 “경영학이란 학문이 실용적이지 않아 회의가 든다”고 말해왔다.

99년 이후 한국사회를 뒤흔든 ‘코스닥 광풍(狂風)’을 업고 떠오른 진씨는 그러나 올 봄 코스닥 붕괴조짐과 함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진씨는 올 8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금융시장의 풍토가 보수적이고 감독당국이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1000억원대 재산을 모은 진씨의 관심은 연예 분야에까지 미쳤다. 진씨는 클럽 MCI나 계열 창업투자회사를 통해 영화 ‘리베라 메’에 4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진씨는 올 6월12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영화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까지 해 영화사업에 큰 애착을 보였다.

진씨는 신인철 사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올 9월2일 출국금지돼 검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2개월 반 가량 서울 제주도 등지에서 검찰 추적을 따돌리며 활보했다. 검찰은 최근 “진씨가 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병실을 덮쳤으나 진씨가 며칠 전 퇴원한 상태였다”며 ‘진승현 추적’에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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