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숙박 지정업소 실태]'2002 월드인' 러브호텔 변칙운영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36분


서울시가 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002년 월드컵대회 외국인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월드인(World Inn)으로 예비 지정한 숙박업소들의 상당수가 러브호텔 형태로 변칙영업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예비 지정 376개 월드인 중 강남구 마포구 강북구 등 6개구 60곳에 대해 대실영업 실태와 숙박료 등을 본보 취재팀이 조사한 결과 이들 업소의 대부분이 러브호텔처럼 대실 중심으로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업소의 35%는 오후 10시 이전에 체크인하려는 숙박객에게는 정식 숙박요금의 절반 이상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었고, 아예 오후 11시 이전에는 숙박객을 받지 않는 곳도 5곳이나 돼 정상적인 숙박업소 기능마저 포기하고 있었다.

월드인 예비지정 60개 숙박업소 운영실태

대실영업 중인 업소60개(100%)
대실요금 분포1만5000∼3만5000원
11시 이전 숙박시 추가요금 요구 업소21개(35%)
추가요금 분포1만∼2만원
11시 이전 숙박 불가능 업소5개(8%)

▽러브호텔인가 숙박업소인가〓이들 업소의 대부분이 유흥가에 인접한 숙박업소 밀집지역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히 대실 영업 중심으로 업소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자정무렵에는 상당수 업소가 술에 취한 남녀커플로 들어차 빈 객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부분의 업소가 낮에도 붉은 조명과 두꺼운 커튼으로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성인비디오를 복도에 비치하거나 별도 채널을 통해 성인영화를 상영하는 업소도 상당수였다.

신촌 R여관 업주는 “대실손님 비중이 60% 이상이기 때문에 숙박손님만으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며 “월드컵이 아니라 월드컵할아버지가 열린다고 해도 대실손님 위주의 영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포의 J여관 업주는 “월드컵대회 숙박업소로 지정되면 별다른 혜택없이 신경써야 하는 일만 늘고 있다”며 “사실 언제라도 월드인 지정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편의시설은 전무〓조사대상 업소 중 외국어를 표기했거나 예약시스템을 갖춘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예약을 원한다고 하자 대부분의 업소에서는 “아무때나 오면 된다”며 오히려 의아해 하는 반응이었다.

특히 이들 예비지정 업소 중에는 여인숙과 비슷한 열악한 시설여건인 곳도 있어 서울시의 선정기준에 의문이 가기도 했다. 천호동의 한 여관 업주는 “외국인이 우리 업소에 올 이유도 없겠지만 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오히려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계동의 S여관 지배인 K씨는 “마포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보러온 외국인들이 상계동까지 와서 잠을 자겠느냐”며 “설사 온다고 하더라도 몇 명 되지 않는 외국인들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편의시설을 갖춘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대안은 없나〓서울시의 월드인 지정사업이 이처럼 난관에 부닥친 것은 당근과 채찍 모두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현재 연리 6%로 개 보수자금의 50%까지 대출해주고 있지만 이 돈을 빌려쓴 업소는 6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지정업소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대신 엄격한 관리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월드인 제도가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정훈·황일도·송홍근·이지은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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