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기념관 '사업회' 전시관 설계논란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9시 01분


박정희기념사업회가 추진 중인 ‘박정희기념관’이 공공도서관의 기능이 없는 단순한 자료실 형태로 설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박정희기념관이 공공도서관 기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부지를 내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서울시와 ‘기념관 건립반대 국민연대’측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10월초 박정희기념사업회의 기념관 설계 현상공모 발표 이후 기념관을 설계 중인 5개 설계회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서울시가 조건으로 내건 공공도서관의 기능을 갖춘 기념관으로 설계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회사가 설계하고 있는 기념관은 모두 박정희 전대통령 관련 자료를 보관하거나 통치자료를 연구하는 기능만 갖추고 있는 것. 이들 업체는 현재 기념관 설계를 60∼80% 가량 마친 상태다.

한 설계회사의 설계담당자는 “기념사업회로부터 전달받은 설계지침에는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의 기능을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이 없었다”며 “내년 1월15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설계안은 박 전대통령 재임시절의 자료와 관련 도서를 전시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짜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설계회사 담당자도 “연면적 2500평 규모는 박 전대통령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열람실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는 기념사업회가 제시한 설계지침에 맞는 기념관을 설계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 주장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원칙적으로 ‘공공도서관 기능이 없는 기념관은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내심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서울시의 한 고위관계자는 “시가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협조하는 것은 기념관이 내용에 관계없이 공익적 성격을 띠는 도서관이라는 점과 완공 후 시에 기부채납한다는 두 가지 명분이 있기 때문인데 단순한 자료실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난감해했다. 그동안 국정감사 등을 통해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혀 온 고건(高建) 서울시장의 대응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측은 “아직 최종 설계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기념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어 설계안 변경 등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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