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게이트' 수사]금감원 조직적 은폐의혹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9시 01분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이덕선·李德善 부장검사)는 25일 금융감독원에서 한국디지탈라인(KDL) 정현준(鄭炫埈·32)사장 등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 증빙서류를 넘겨받아 검토했으나 내용이 너무 부실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금감원의 조사가 상당부분 진척되고 관련자료도 방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검찰에 보낸 고발내용 증빙자료는 A4 용지 10여쪽에 불과한데다 동방 및 대신금고로부터 누가 얼마를 대출받았는지 등을 정리한 단순한 보고서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검찰은 금감원에 다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금감원이 지난해 12월 대신금고가 대주주인 정사장과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56)부회장에게 62억여원을 불법대출한 사실을 포착하고도 영업정지 등 중징계 대신 임직원 3명만 가볍게 징계한 점에 비춰 당시 장래찬 금감원 비은행검사1국장 외에 그 윗선의 고위간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금감원 고위 간부들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22일 정사장과 동방금고 유조웅사장, 대신금고 이수원 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도 의뢰하지 않았다. 유사장은 금감원의 고발이 있기 하루 전인 21일 미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동방금고 유사장이 잠적하기 직전 큰 가방을 챙겨 떠났다는 점에 비춰볼 때 유사장과 동방금고측이 불법대출과 로비관련 물증의 은폐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금감원 직원들과 동방 및 대신금고 대출담당 직원들을 소환해 637억원이 불법대출된 경위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정사장과 동방금고 이부회장 등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었으나 이들이 종적을 감춰 소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정사장이 주식시세 조작을 위해 조성한 사설펀드의 가입자 명단을 금감원에 요청했다.

이 펀드는 정사장이 평창정보통신 등에 대한 주식투자를 위해 조성한 것으로 전체 펀드규모가 수십억원에 이르며 금감원 임직원 등 정관계 인사, 사채업자 등 수십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와 함께 동방 및 대신금고에서 불법대출된 514억원 중 정씨 계좌에서 발견되지 않은 400억원의 행방을 캐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동방 및 대신금고, 정사장과 이부회장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관련장부와 자료를 압수해 조사하기로 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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