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이운영-박혜룡씨 '물밑접촉설' 의혹 증폭

  • 입력 2000년 9월 14일 01시 13분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등의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설’이 이번엔 이운영씨의 구명을 위한 ‘물밑접촉설’로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 사생결단을 할 정도의 적대관계로 알려졌던 이운영씨측과 박지원장관측이 이 물밑접촉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포착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것.

특히 박장관측이 사직동팀과 검찰 주장대로라면 ‘1300만원 뇌물수수 혐의자’에 불과한 이씨측과 그렇게 장기간 다각도의 채널로 대화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다음은 양측 주장을 토대로 재구성해본 물밑접촉 경위.

▼박지원장관과의 접촉▼

이운영씨를 돕는 동국대 동창들이 박장관과 접촉한 것은 알려진 대로 모두 세차례. 첫번째와 세번째는 이씨측이, 두번째는 박장관측이 요청해 성사됐고 세 번 모두 메신저는 동국대 총동창회의 지찬경 사무총장이었다.

▽첫 접촉(5월6일)〓이날 접촉은 지씨가 이씨의 호소문을 직접 전달하기 위한 것.

이 호소문은 대단히 정중하게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장관은 만나자마자 “이운영이 그 사람 나쁜 사람 아니냐”는 식으로 버럭 화를 냈다는 게 지씨의 전언.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지씨는 “장관님께서 (대출보증 전화압력을) 했다면 장관님이 죽어야 하고 아니면 이운영이 죽어야 한다”며 ‘선처’를 부탁한 뒤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두번째 접촉(8월30일)〓본보 등이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설을 처음 제기한 다음날인 이날 오전 박장관측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지씨에게 두 차례 걸려왔다.

지씨는 이날 오후 4시반경 장관 집무실에서 박장관과 대면했을 때 ‘첫 만남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박장관은 동아일보 등을 펼쳐 보이며 “제가 이렇습니다. 답답해서 불렀습니다”라고 했다는 것.

이어 박장관은 “이운영이가 기자회견을 하지말고 빨리 동부지청이나 서울지검에 출두하게 해라. 그러면 내가 자술서를 써서라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는 것.

특히 박장관은 “도울 길이 있으면 코치해달라”고 조언을 부탁하기도 했고, 이에 지씨는 ‘약식기소’ ‘공소보류’ 등의 개인적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박장관은 대화를 마친 뒤 지씨를 부속실 밖까지 배웅했다. 특히 헤어질 때 지씨가 “장관님이 선처해주시면 제가 (박장관의 대출보증 압력설을 말하지 못하게) 이씨의 입을 막아보겠다”고 말하자 박장관은 파안대소했다고 지씨가 전했다.

▽세번째 접촉(8월31일)〓지씨는 이씨측 인사들의 “한번 더 만나 선처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에 따라 박장관을 다시 만났다. 그러나 박장관은 전날과 달리 냉담한 표정으로 “왜 또 왔느냐”는 등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여 지씨도 이씨측에 “이제 다 틀렸다. 나는 손떼겠다”고 전했다는 것.

당시 지씨의 말을 들은 이씨측의 한 인사는 “박장관과의 타협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기습 기자회견’을 열어 박장관의 두차례 전화압력설을 폭로했다.

▼박혜룡씨와의 접촉▼

박장관과의 직접 접촉에 앞서 이운영씨측은 먼저 박혜룡씨를 통해 박장관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이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대목.

▽첫 접촉(1월7일)〓지씨와 이운영씨의 한 측근, 그리고 이씨의 부인 이광희씨 등은 아크월드 사무실에서 박혜룡씨를 만났다.

이씨측은 “살려달라. 박장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박씨는 오히려 “이씨가 보증을 서주지 않아 망할 뻔했다”며 화를 냈다. 이에 이씨측도 “당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맞받아쳤고 이에 박씨는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신세지고 해칠 사람이냐”며 누그러졌다는 것. 이씨측의 박장관과의 면담주선 요청에 박씨는 “숙모(박장관의 부인을 지칭)에게 얘기해봐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 도중 박씨는 “한빛은행 지점장과 약속이 있다”며 일어섰다고 이씨측이 전했다.

▽두번째 접촉(2월 초순)〓지씨 등이 재차 박장관과의 면담주선을 요청하자 박씨는 “나 혼자는 박장관을 만나러 못간다. 가면 혼난다”며 “이운영씨와 함께 가자”고 말했다는 것.

이에 이씨측은 “수배중인 이씨가 어떻게 장관을 만나겠느냐”며 난색을 표했고 박씨는 다시 “이씨가 못가면 나도 못가겠다”고 말했다는 것. 이에 이씨측은 “대신 편지를 쓰자”고 제안했고 박씨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번째 접촉(3월 초순)〓지씨 등이 이씨의 편지를 들고 박혜룡씨를 찾아갔으나 박씨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초 약속과 달리 면담주선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화가 끝났다.

그 뒤 이씨측은 박씨의 협조 없이 ‘별도의 박장관채널’을 뚫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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