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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8월 25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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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빛은행 관악지점 신창섭지점장과 김영민대리가 6개월 동안 167차례에 걸쳐 불법 서류를 꾸며 R, A, S사 등 4개 회사에 463억원을 대출한 사건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빛은행은 대출납품업자와 구매자가 같은 은행 같은 지점을 이용할 경우 다른 은행과 ‘크로스 체크’하지 않고 담당자 1명이 전결 처리할 수 있다는 맹점을 신씨 등이 100% 활용해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한빛은행에 따르면 신지점장이 김대리에게 수출용 원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할 경우 발급하는 내국신용장(로컬 LC)을 불법으로 만들어 대출을 처음 지시한 것은 올 2월 초.
신씨는 이미 대출한도를 넘겨 200억원대 은행돈을 빌려쓴 4개 회사를 위해 463억원을 잘게 쪼개서 1∼3억원씩 빌려줬다. 대출한도를 넘기지 않기 위해 자신이 관리하는 거래기업의 이름을 도용해 100여개 기업이 나누어 빌려쓴 것으로 가장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이들 기업에 지점장 전결로 발행할 수 있는 로컬 LC의 발행한도는 3억원. 보통 로컬 LC 거래는 납품업체와 수출기업의 거래은행이 달라 ‘존재하지도 않는 서류’를 갖고 불법대출을 할 수 없다.
신씨는 한빛은행 자체조사에서 범행동기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런식으로 돈을 빌려주더라도 자금을 회수할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빛은행이 밝혔다. 실제로 4개사는 올 6월21일까지는 돈을 받은 뒤 3일 이내에 결제해야 하는 은행 규정을 지켜 한빛은행 검사국도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신씨 등이 한빛은행의 감사망에 걸린 것은 이달 8일. 전산실에서 무역어음대출 분야의 전산자료를 제출받아 ‘동일지점 로컬 LC 발행내용’을 확인하는 ‘테마감사’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본점에서 조사팀이 11일 관악지점에 들이닥쳤고 일요일인 13일 불법사실을 포착했다. 금융감독원에는 14일 구두로 통보했다.
금감원 은행검사1국 관계자는 “한빛은행이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의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박모씨에게 부당대출을 해준 혐의를 잡고 자체조사중이라는 사실을 구두로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한빛은행은 고위층 개입의혹설이 끊이지 않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빛은행이 불법대출을 적발하면 자동 고발하도록 돼 있는 내부 규정과 달리 10일 가까이 지난 22일에야 검찰에 고발하고 23일 금감원에 정식 보고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은행측은 “즉시 고발하지 않은 것은 다른 의도 때문이 아니라 추가 조사와 함께 부실규모를 줄이기 위해 4개 회사를 상대로 담보 제공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한빛은행 검사국은 “11일 이후 250억원의 담보를 추가로 확보했다”며 “463억원을 100%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빛은행측은 “신지점장은 조사가 시작된 뒤 본점에 보고하러 왔을 때 은행측이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채권회수 등 문제가)곧 정리가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밝혀 신지점장의 진술에 따라 사건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최영해·김승련기자>money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