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母子 '끝없는 방황'…아들 학교적응 실패 비행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40분


‘어느 탈북자 모자(母子)의 방황.’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먼 친척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화제를 모았던 탈북자 정순영씨(41·여)가 29일 사기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지검 형사6부(김준규·金畯圭 부장검사)에 의해 구속기소된 정씨는 현대백화점 총무부에서 일하던 3월 업자들에게 “현대백화점 내 아이스크림 코너를 넘겨받도록 해주겠다”고 속이고 두달 동안 4회에 걸쳐 1억35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검찰조사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구속된 아들의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고, 회사에서 대출받은 9000여만원을 갚기 위해 사기를 했다”고 진술했다.

정씨가 북한을 탈출한 것은 96년. 옥수수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배고픔이 싫어 아들 박철군(19)과 함께 한밤중에 강을 헤엄쳐 건넜다. 정씨는 귀순한 뒤 현대그룹의 재정적 도움을 받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풍족함에 마음껏 빠져보기도 했으나 곧 이전의 삶과 너무 다른 새 생활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들도 밖으로 나돌았다.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친구들에게 이질감을 느껴 친해지기가 어렵다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박군은 곧 불량학생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친구들을 놓치기 싫어 함께 오토바이를 훔치고 인신매매도 돕던 박군은 결국 99년 말 구속됐다.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정씨 역시 6개월 뒤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것.

지금까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도와주던 현대그룹도 이번에는 고개를 돌렸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씨가 정전명예회장의 친척인지 여부는 정전명예회장 자신도 기억하지 못해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전명예회장의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물질적 지원을 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니는 정씨 모자를 끝없이 도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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