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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13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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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이 순안공항에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은 반면 빌리 브란트 전서독총리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동독 땅을 밟았다. 환영 열기나 극진한 의전 등만 고려하면 남북한 정상회담이 동서독 정상회담보다 훨씬 좋은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1970년 3월 19일 오전10시. 브란트 전총리는 특별 열차편으로 에르푸르트역에 도착했다. 그는 환영나온 빌리 슈토프 전동독총리에게 “날씨가 참 좋군요”라고 첫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슈토프는 굳은 표정으로 “회담은 날씨와 관계없다”며 냉랭하게 대꾸했다.
차가운 악수와 의례적인 인사말을 나눈 뒤 두 정상은 수행원과 함께 자동차로 5분 거리인 회담장 에르푸르트 호프 호텔로 각각 향했다. 반면 30년 뒤 평양을 방문한 김대통령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례적인 공항 영접과 의장대 사열 등 환대를 받았다.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링컨컨티넨탈에 함께 탄 채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는 파격까지 연출했다.
동독 정부의 얼음장같은 반응과는 달리 수천명의 동독 주민들은 브란트의 역사적인 동독방문을 환영했다. 그들은 브란트가 탄 자동차를 향해 “빌리! 빌리!”를 연호했다. 일부는 자동차로 다가와 “어서 내리세요”라고 말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브란트의 눈가에는 눈물이 번졌다고 당시 독일 언론은 전했다. 브란트는 회담전 창 밖으로 한차례 모습을 드러내 환호하는 동독 주민에게 손을 흔들며 “제발 진정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독 당국의 냉랭한 반응 때문에 회담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브란트는 훗날 “자유를 열망하는 동독 주민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고 회고했다.
남북이 실무 접촉에서 국가 연주와 국기 게양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서독도 환영식과 국가 연주는 물론 연회도 생략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 이상의 정식회담과 오찬, 만찬 등 2박3일의 공식 일정으로 진행된 반면 동서독정상은 하루 일정으로 오전과 오후로 나눠 회담을 했다. 동서독 정상은 점심 식사도 각자 자기편 수행원과 함께 했다.
한국이 수행원과 기자 등 18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한 반면 서독은 실무 대표와 속기사, 경호원 등 20명만을 파견한 것도 크게 다르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