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월드컵 에티켓]정착안된 가격정찰제

  • 입력 2000년 6월 11일 19시 38분


‘깎아 주세요.’ ‘비싸요.’

대학과 대학원을 한국에서 다니며 7년째 서울 신촌에 살고 있는 일본인고지마 게이코(34·여). 그는 일본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올 때마다 제일 먼저 익히는 것이 물건값을 깎는 이같은 말들이라고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동네 구멍가게에도 ‘대파 298엔’ ‘배추 4분의 1쪽 98엔’식으로 가격표가 붙어 있어요. 한국에선 주인에게 말만 잘하면 과일 한두개, 나물 한줌씩은 그냥 얹어 주잖아요. 물건 사는 재미도 있지만 사고나서도 제값에 산 건지 혼돈스러울 때가 많아요.”

백화점 등 대형매장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선 가격표시제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는 상점 주인이 부르는 가격과 자신의 ‘눈치 가격’을 비교해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 물정에 어두운 외국인들은 쇼핑할 때 ‘속는다’ 치고 물건을 사거나 ‘무조건 깎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남편과 함께 워싱턴주 시애틀 등에서 7년간 살다 2년 전 귀국한 주부 이승희씨(32·서울 강남구 삼성동).

“미국인들은 자기 집 앞에서 여는 ‘개라지 세일’에서도 장난감 옷가지 등에 일일이 가격표를 붙여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에 가기 전엔 몰랐는데 돌아온 다음부터는 물건을 살 때마다 값 때문에 실랑이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져요.”

물건값만이 아니다. 음식점이나 서비스업소에서도 가격을 표시하지 않아 나중에 지불할 때 놀라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불편신고센터에도 이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한 외국인들의 신고가 적지 않다.

일본인 남성 하라다(가명·41)는 3월경 서울 남대문의 한 포장마차에서 맥주 3병과 안주 몇 접시를 시켜 먹었다가 10만7000원을 ‘강제로’ 냈다며 신고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남대문 지역 상인들이 자체 계도에 나서 해당업자에게 영업정지처분을 내리고 대대적인 자정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 김초선과장은 “아직까지도 일부 상인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보고된다”며 가격표시제만 제대로 시행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