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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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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환경운동가이며 시민운동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장원(張元)전총선연대 대변인이 미성년인 여대생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은 충격과 함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운동에는 어떤 분야보다 엄격한 도덕성과 개혁성이 요구되는데다 시민운동단체들이 그동안 정치권이나 재계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도덕성 때문이었다. 장씨의 성추행 소식은 5월17일 광주 행사에 참석했던 ‘386세대’의 술자리 파문과 함께 우리 사회 신지도층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고 막 개화하기 시작한 시민운동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사건이 터지자 장씨가 몸담았던 녹색연합은 27일 즉각 긴급상임위원회를 열어 장씨를 제명하고 백배사죄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소식이 알려지며 녹색연합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는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당신들을 믿고 돈을 낸 내가 바보였다” “앞으로 대학생 자원봉사자는 받을 생각도 말라”는 등의 항의로 업무가 마비됐다.
각 단체 홈페이지에도 네티즌의 항의가 잇따랐다. 28일 점심 무렵까지 900여건의 의견이 오른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에서부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허탈하다”는 내용과 함께 “이 일을 계기로 환골탈태하라”는 격려글도 실렸다.
총선시민연대 간부들은 27일 밤 12시 긴급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는 도덕성을 바탕으로 일하는 시민운동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이 일을 계기로 시민운동가들은 더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자세로 시민운동에 전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원순(朴元淳)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운동이 갑작스레 붐을 일으키면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며 “차제에 시민운동 전반에 걸친 자기개혁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이승희 정책부실장은 “지금까지 도덕성을 전제로 일을 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떤 사업을 벌이더라도 ‘너희나 잘하라’는 냉소적 반응을 만나지 않겠는가”고 우려했다.
총선연대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여성단체연합은 성명을 내고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운동가이자 그간의 활동으로 인정받은 공인으로서 한 여성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행위에 대해 분노하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차제에 여성의 인권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그간 가속도가 붙었던 시민운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현재 물밑에서 진행 중이던 전국 규모의 시민단체 연합인 개혁연대(가칭) 설립이 보류됐으며 이 기회에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을 검증하는 내외부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