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人 개인적 처신 잇단 물의]"그들은 도대체 왜?'

  • 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심각한 상황이다. 이 나라 ‘공인(公人)’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러다간 우리 사회가 ‘도덕적 공황(恐慌)’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이 나라 개혁과 도덕성의 전위(前衛)를 자임하고 나선 ‘공인’들이 줄줄이 ‘몰(沒)도덕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당신들마저…”라는 지탄과 개탄 속에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5·18’ 20주년 전야에 김민석(金民錫)의원 등 민주당 386세대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문용린(文龍鱗)교육부장관 한상진(韓相震)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등이 비극의 현장인 광주에서 룸살롱 술판을 벌여 지탄이 쏟아진 게 바로 엊그제의 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4·13’ 총선 때 이 나라 정치권의 썩고 병든 부위를 도려내겠다고 득의에 차 수술 메스를 들고 활보했던 장원(張元)전 총선연대 대변인이 열여덟살 난 여대생을 성추행하다 구속영장이 신청됐고 DJ 경제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이선(李`)산업연구원원장이 여직원 성희롱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결코 개인적 처신의 문제나 돌출 사건으로 넘겨 버리기 힘들다.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과 거의 불모와 다름없는 공인 의식의 척박한 토양에서 배태(胚胎)된 필연적 귀결로 보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희대 도정일(都正一)교수는 이 나라 공직 사회의 문제에 대해 “테크노크라트적인 업무수행 능력과 개인의 내면적 완결성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었다”고 분석하면서 “최근의 사태는 ‘범 시민 정치세력’ 역시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확실하게 드러내 주었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충격파와 낭패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사태의 이면에 확연하게 내재된 ‘기만성(欺瞞性)’ 때문이다. 물의의 두 주역은 바로 지난달 ‘4·13’총선 때 한편에선 ‘부패 무능 정치인 퇴출 운동’을 주도하고, 한편에선 그 바람에 힘입어 당선된 수혜자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회에 이 같은 ‘기만성’이 온존하고, 더 나아가 성공의 밑천이 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 같은 기만으로부터 시민사회를 지켜내는 처방은 무엇인가.

논의는 두 갈래로 제기된다. 첫째는 철저한 준비 과정 없이 갑자기 ‘권력자’ ‘유명 인사’ ‘스타’로 부상하는 ‘공인 그룹’의 허약한 내면(內面)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철저한 자기 성찰만이 처방이라는 지적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鄭惠信)씨는 “갑자기 유명인이 되면 본모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도덕’ ‘정의’ ‘순수’ 등의 덕목은 본능적 욕구가 아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본능을 억누르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또 한가지 이들에게서 ‘이미지 정치’와 ‘매명(賣名)’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하고 박수만 보내온 시민들도 스스로 책임 있는 자세였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 공인을 엄혹하게 감시하고 검증하고 채찍질하는 일은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시민들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김창희기자> 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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