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機 사격장 피해]폭탄투하사고후 사격훈련 재개

  • 입력 2000년 5월 12일 19시 14분


12일 낮 12시경 경기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앞바다. 미 공군 전폭기들이 마을에서 빤히 보이는 해상사격 목표인 농섬에 폭탄을 퍼부었다. 요란한 폭발음에 고막이 찢어지는 듯했다.

미 공군측이 8일의 폭탄투하 피해(본보 12일자 A31면) 등과 관련해 주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11일 밤늦도록 사격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12일 또 사격훈련을 재개하자 주민들은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노했다.

철조망으로 차단된 미 공군 매향리의 기총 사격장(일명 쿠니 사격장)과 마을은 불과 300여m 거리이고 해상사격 목표인 농섬도 해안에서 불과 1.2㎞ 거리다. 폭탄투하와 기총사격 훈련이 실시되면 충격과 폭음 때문에 본능적으로 몸을 숨겨야 할 정도다.

12일 오전 9시경 철조망 근처에 있는 매향리 미공군 폭격소음 공해대책위원회(위원장 전만규·全晩奎·44) 사무실에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책위 전위원장과 매향3리 이장 김만성씨(44) 등 주민 6명은 이날 보상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사격장에 들어가려 했지만 정문에서 출입이 통제돼 되돌아 나왔다. 이들은 낮 12시부터 폭탄투하 훈련이 재개되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이날 사격장에 들어가려고 한 데는 피해보상 요구를 전달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철조망 안에 있는 논밭에 파종을 해야 하는데 미군측이 정문을 제외한 6개의 출입문을 봉쇄한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주민 최중빈(崔重彬·64)씨는 “사격이 없는 주말과 휴일, 평일 오전 7시 이전에는 사격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7개 출입문을 다 열어 놓았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최근 자주 시위를 한다는 이유로 정문만 열어 놓아 주민들이 1∼2㎞를 돌아가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미 공군은 55년 매향리 일대 해상과 육지 719만평에 사격장을 만든 뒤 월요일 오전부터 금요일 밤 늦게까지 폭탄투하, 기총사격 등의 훈련을 계속해왔다.

이곳 사격장의 폭음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주민은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일대 주민 3200여명. 주민들은 오폭과 불발탄 때문에 다치고 폭음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가축 사육에도 큰 지장을 받고 있다.

해상 사격 목표인 농섬은 밤낮없는 폭격으로 면적이 종전 3000여평에서 지금은 900여평으로 줄었을 정도다.

전위원장은 “그동안 매향리 사격장 일대에서 발생한 오폭과 불발탄 폭발 등으로 주민 9명이 죽고 21명이 다쳤다”며 “지난해 7월에는 로켓포탄 2발이 선착장 바로 앞바다에 떨어지고 9월에는 포탄 1발이 마을 한가운데 떨어진 일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8일에는 농섬에서 10㎞ 가량 떨어진 쌍섬에서 주민 30여명이 조개를 채취하다 미군 전투기가 투하한 오발탄에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매향1리 주민 전주연씨(39)는 “사격장도 아닌 쌍섬에서 주민 30여명과 함께 조개를 캐는데 갑자기 전투기 2대가 날아와 폭탄 4발을 개펄에 투하해 급히 바위 뒤로 숨었다”며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피해는 소음피해. 주민들은 “김포공항은 소음이 90㏈ 정도지만 매향리는 120㏈이나 된다”고 말했다.

5년 전에는 매향교회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됐지만 소음 피해가 심하고 비행기가 저공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놀라 2개월 만에 문을 닫기도 했다.

주택과 가축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향 3리 주민 이세원(李世源·41)씨는 “폭음 때문에 집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졌고 젖소들이 난산과 조산을 거듭해 가축도 기르기 힘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88년 대책위를 만든 뒤 사격장을 점거하는 등 국방부와 미 공군을 상대로 사격장 이전과 주민 보상 등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책위는 98년 2월 주민 15명의 이름으로 국가를 상대로 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대책위는 이달 말경 서울지법에서 열릴 예정인 결심공판에서 이기면 매향리 500가구, 석천리 200가구, 이화리 100가구 등 모두 800가구의 이름으로 320억원(1인당 약 1000만원)의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낼 예정이다.

한편 국방부는 97년 사격장을 이전하는 대신 매향 1 ,2리 주민들의 주거지를 사격장에서 5㎞ 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주시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주민들이 폭격위험, 폭음피해, 생계보장 등에 대한 대책이 빠졌다며 반발해 협상이 결렬됐다.

<화성=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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