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金 전화인터뷰]"性관계 맹세코 없었다"

  • 입력 2000년 5월 8일 01시 41분


“로비를 위해 성관계를 가졌다뇨. 하늘에 맹세코 아닙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 은신해 있던 미국 무기업체 로비스트 린다 김(47)이 7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린다 김은 이날 밤 11시경 기자와 가진 단독 전화인터뷰에서 “이양호 전 국방장관이 오늘 3번이나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하면 사건이 무마돼 조용해질 것 같아 내가 당신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정말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린다 김과의 일문일답.

―백두사업 당시 이양호 장관과 얼마나 자주 만났나.

“당시 이장관과 한국에 올 때마다 몇차례씩 만나고 편지를 주고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었을 뿐 다른 뜻은 없었다.”

―항간에는 당신이 ‘부적절한 관계’로 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있다….

“백두사업 당시 이전장관은 마치 내가 자신의 연인 또는 아내나 되는 것처럼 내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을 시켜 찾는 등 따라다녔다. 그러고도 마치 내가 ‘꼬리’나 치고 다니는 여자처럼 언론에 흘린 것은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서(戀書)를 주고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편지를 주고받은 시점은 백두사업건이 막 성사될 무렵이었다.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마치 연인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준 것도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아야 된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렇다면 공적인 관계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라는 얘기인가.

“당시 이장관이 하도 따라다녀 내가 ‘삼촌과 조카’사이로 하자고까지 제의한 적이 있다.”

―이전장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당시 이장관이 ‘미국회사를 위해서만 일하지 말고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일하라’고 충고해주기도 해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코너에 몰렸다고 남편과 두 딸이 있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이 대목에서 린다 김은 울분을 참지 못하는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언제부터 무기거래 로비스트로 일했나.

“나는 76년 6월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무기 로비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박종규 청와대경호실장이 많이 도와줬다.”

―로비스트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까지 한국과의 무기거래를 성사시킨 것만도 10건이 넘는다. 또 나는 한국뿐만 아니라 호주 터키 등과 거래하고 있다. 단순히 성을 내세워 했다면 가능했겠느냐. 나는 프로페셔널 로비스트다. 그런데도 유독 여자라면 합법적인 로비스트로서 대우해주지 않는 한국적 풍토가 너무 아쉽다.”

―어떻게 해서 여자가 하기 힘든 무기거래 분야에 뛰어들게 됐나.

“무기거래에 뛰어든 것은 카쇼기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2년간 그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이후에도 정말 무기라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다.”

―백두사업 등과 관련해 한국의 고위공직자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무기로비와 관련해 어느 고위 공직자에게도 뇌물을 건넨 적이 없다. 만약 뇌물을 건넸다면 왜 검찰에서 나오지 않았겠느냐.”

―가족의 근황은….

“지금 남편이 충격을 받아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있다. 사건이 마무리되면 반드시 법적 대응을 하겠다.”

―부모님과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이유는….

“사연이 길다.아버지는 생부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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