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특종으로 본 동아 80년]'眞實의 펜들'

  • 입력 2000년 3월 27일 20시 12분


“만저우(滿洲)에서 일본군이 우리 동포를 학살한다고 하니 내가 가서 보고 동아일보가 속간(續刊)되면 이 사실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려 하네.” 1920년 10월 15일. 동아일보 장덕준(張德俊)기자는 누이 덕희(德姬)씨에게 이 한마디를 남긴 채 차가운 만저우 벌판으로 떠났다.

장기자는 동아일보가 일제에 의해 정간됐음에도 불구하고 속간에 대비해 ‘경신년대토벌(庚申年大討伐)’에서 희생된 북간도 한인의 실상을 취재했던 유일한 기자였다.

그는 중국에 도착해 장암(獐岩·노루바위)교회 학살현장을 취재하고 일본영사관을 방문해 울분을 터뜨렸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이었다. 학자들은 일제가 자신들의 만행이 보도되는 것을 막으려고 그 해 11월 말 장기자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사진은 그 이후 80년 동안 동아일보 편집국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장기자가 가졌던 치열한 기자정신의 영향 때문일까. 지난 80년간의 동아일보 역사는 ‘특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암울한 시대가 동아일보의 특종을 만들기도 했고 동아일보의 특종이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창간이후 일제시대▼

아무도 일제의 강압에 맞서 말문을 열지 못하던 시절 동아일보는 나라 잃은 민족의 입을 자처했다. 그 목표는 ‘민족의식 고취’와 ‘건국’이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경쟁적인 특종의 개념은 없었다. 오로지 사실과 의견을 용기 있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바로 특종이 되는 시절이었다.

동아일보는 창간 후 보름만에 ‘평양에서 만세소요’기사를 게재했다가 발매금지를 당했다. 22년 8월 1일에는 일본 니가타(新潟)현에서 벌어진 ‘조선인 근로자 학살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이상협(李相協)당시 편집국장은 현지에 급파돼 취재활동을 벌였으며 1년 뒤인 23년 9월 1일 발생한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한국인 학살사건’때도 파견돼 한국인 사망자명단을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26년 6·10만세사건 직후에는 ‘순종 인산(因山)’ 녹화 필름을 전국에서 순회 상영했고 27년에는 전국 수리조합실태를 취재, 일제의 농민수탈실상을 폭로했다.

31년 만저우사변을 전후로 언론탄압이 가열되자 동아일보는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기획특종’의 역사를 남겼다. ‘조선의 노래’를 제정하고 충무공유적보존운동, 농민계몽을 위한 브나로드운동, 전국적인 한국어 강습회사업 등이 그것이다.

36년 8월 손기정(孫基禎)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시상식 장면에서 손선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진을 게재했던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도 일종의 ‘사진 편집 특종’이었다.

¤--->동아일보 사사(社史)의 한 대목. “누구의 지시도 명령도 아닌 거의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이길용(李吉用)체육부 기자는 조사부 이상범(李象範)기자에게 사진 원본을 건네주며 빙그레 웃었을 뿐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내민 자도 받은 자도 서로의 의사가 유통되었던 것이다.”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 관련 사사(社史)의 한 대목

“누구의 지시도 명령도 아닌 거의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이길용(李吉用)체육부 기자는 조사부 이상범(李象範)기자에게 사진 원본을 건네주며 빙그레 웃었을 뿐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내민 자도 받은 자도 서로의 의사가 유통되었던 것이다.”

▼해방공간서 5·16까지▼

45년 해방과 함께 복간된 동아일보는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반공과 반탁에 앞장섰으며 48년 5·10총선에서 적극적으로 유권자 계도에 나서 정부수립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자유당정권이 이승만(李承晩)박사의 영구집권을 획책하며 각종 선거부정을 저지르자 동아일보는 반독재투쟁에 나섰다. 이 시기의 대표적 특종으로는 ‘국민방위군사건’과 ‘56년 부정선거 폭로사건’기사 등이 있다.

6·25전쟁 중인 51년 백광하(白光河)기자는 국민방위군의 최고위 간부들이 각계에 뇌물을 제공했으며 수수자 중에는 국회의원들도 끼여 있다는 사실을 포착해 특종으로 보도했다.

56년 5월 대선에서 이박사가 재집권하자 자유당과 정부는 이박사를 중심으로 한 영구집권을 꾀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동아일보는 그 해 8월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투표함의 투표용지가 바꿔치기된 사실을 한 용감한 경찰관의 폭로에 힘입어 특종 보도했다.

▼군부독재서 6·10항쟁까지▼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은 특종의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 한국기자협회가 67년 ‘한국기자상’을 제정함으로써 언론사의 특종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모두 31회의 한국기자상이 수여됐는데 동아일보는 취재와 기획보도 부문에서 16건을 수상해 전국 언론사 중 역대 최다 수상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87년 6·10민중항쟁 전까지의 군사독재시절은 언론의 암흑기였다. 특히 70년대 박정희(朴正熙)정권은 극도의 언론탄압을 가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71년의 ‘진실보도로 언론자유 수호’기사로 편집국 기자 전원이 제5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또 75년에는 구속됐던 야당 인사들에 대한 고문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1917년 한국기자상 수상결정이유

“4·27대선과 5·25총선을 통해 보도전반에 걸쳐 자유언론 수호의 대원칙 아래 집요한 외부압력을 일절 배제해 어려운 여건 아래서 충실하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기자들은 △선거계몽 캠페인 △공평하고 공정한 보도 △대담하고 특이한 기획 등에서 활약상을 보였다.”

80년에 들어서도 동아일보는 전두환(全斗煥)군사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지만 저항과 고발정신을 잃지 않았다. 특히 87년 1월부터 시작된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 및 은폐조작사건’ 특종 보도는 6·10항쟁을 촉발해 민주화를 한발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및 은폐조작사건

권력의 잇따른 ‘거짓말’과 동아일보의 싸움은 강민창(姜玟昌)당시 치안본부장이 구속될 때까지 1년 동안 계속됐다. 동아일보는 박군의 사망이 알려진 다음날부터 가족과 검시자의 증언을 토대로 경찰의 ‘쇼크사’ 주장을 5일 만에 뒤집었다. 또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이후 경찰 간부가 사건에 연루되고 검찰도 초기에 이 사실을 알았다는 사실을 특종보도했다. 그리고 박군이 숨진 1년 후에는 당시 부검의의 일기장 공개로 경찰이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처음부터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강전치안본부장이 구속됐다.

▼민주화이후▼

민주화를 촉발시켰던 동아일보의 개가는 이후 권력자와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철저한 감시로 이어졌다. 특종의 내용과 형식도 단순 고발이나 폭로에서 나아가 ‘탐사 발굴’ 특종으로 바뀌어갔다.

93년 2월과 3월, 기자 12명이 발로 뛰어 일궈낸 ‘김영삼(金泳三)정부 첫 조각검증’기사는 대표적인 사례. 25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이 기사는 대통령의 검증 안된 인물에 대한 ‘깜짝인사’의 폐단을 지적하고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였다.

95년 10월 19일자에 특종 보도된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최초 보도는 과거 군사 독재정권의 추악한 정경유착 실태와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재평가 등 과거청산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검찰의 수사결과 전, 노 두 전 대통령이 재임중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모았다는 사실과 80년 신군부 ‘정권찬탈과정’의 불법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편 동아일보가 97년 ‘김현철(金賢哲)씨 비리사건’을 시작으로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특종을 연달아 터뜨리면서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를 선도하는 ‘탐사 추적보도’의 전형을 세워가고 있다.

동아일보가 특종 보도한 97년의 ‘의정부 판사비리사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판사들의 금품수수 관행이 드러남으로써 법조정화운동의 계기가 마련됐다. 99년 ‘옷 로비 의혹사건’에서 동아일보는 ‘사직동팀 보고서’를 끝까지 추적해 이 사건이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권력형 축소 은폐 사건’이라는 것을 밝혀냈다.한국 언론의 특종을 연구한 한국언론연구원의 오수정(吳秀靜)연구원은 “동아일보는 정치 사회분야에 강했고 취재도 여럿이 함께 뛰는 ‘조직형’이 대부분이어서 권력에 맞선 큰 사건에 강하고 조직력이 뛰어난 동아일보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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