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필호 검거 긴박의 60분]말단순경 탈주범 잡다

  • 입력 2000년 3월 7일 23시 47분


12일동안 전국 경찰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탈주범 정필호씨(37)를 검거한 주역은 뜻밖에도 베테랑 형사가 아닌 햇병아리 파출소 순경이었다. 흉기를 휘두르며 도주하던 정씨를 격투 끝에 붙잡은 서울 은평경찰서 불광1동파출소 주인(朱忍·28)순경은 이제 겨우 경찰에 입문한 지 4년차.

7일 오전 방범순찰을 마치고 파출소에 돌아와 “정필호가 나타났다”는 동료 직원의 말에 주순경은 가슴이 뛰었다. 강력범과 처음으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묘한 흥분감도 들었다.

그는 바로 사복으로 갈아입고 의경 3명을 승용차에 태워 정씨가 동거녀 전모씨에게 전화를 건 삼익아파트 쪽으로 달렸다.‘정필호가 삼익아파트 앞을 지나간다면 골목길로 도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차를 골목길로 몰았다. 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경찰의 추격을 받던 정씨는 삼익아파트 앞을 지나 골목길쪽으로 걷고 있었다.

▼ 변장한 정씨 발견 추격시작 ▼

정씨가 주순경의 눈에 띄기 전 경찰의 포위망에 포착된 것은 이날 오전 6시16분. 25일 이후 열이틀 동안 동거녀 전모씨 집 전화를 계속 감청하고 있던 최광렬(崔光烈·45)경사의 눈이 갑자기 번뜩였다. 아침 일찍 걸려온 전씨의 집 전화기에서 정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

“너, 호야지. 자수하자”라는 전씨의 말에 정씨는 “7시에 불광사앞 삼백집(해장국집)에서 보자”는 말만 반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바로 은평경찰서 관내에 비상이 걸리고 전 직원에게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30여분이 지난 오전 6시49분 전씨의 집으로 정씨의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지 추적결과 불광동 삼익아파트앞 공중전화였다. 일단 형사 2명은 전씨와 함께 약속장소로 가고 나머지 직원들은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씨는 전씨가 형사들과 함께 오는 것을 보고 바로 산으로 달아났다. 잠시후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산을 내려오던 정씨는 미리 잠복중이던 주순경 일행과 마주쳤다. 정씨의 몽타주 사진을 눈여겨봐 온 주순경은 뿔테 안경을 끼고 변장한 사람이 정씨임을 알아채고 차에서 내린 뒤 그를 쫓았다.

정씨의 도주도 필사적이었다. 이때가 출근길로 본격적으로 붐비기 시작할 무렵. 이후 주순경과 정씨 사이에 벌어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액션영화보다 더 긴박했다.

▼ 車탈취해 돌진하자 실탄발사 ▼

정씨는 골목길에서 큰길로 빠져나오던 승용차를 세워 여성 운전자를 흉기로 위협, 차를 탈취했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주순경 일행을 향해 내달렸다. 다급해진 주순경이 차를 향해 공포탄 1발과 실탄 2발을 발사했다.

승용차의 앞 유리창과 조수석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 러시아워로 차량이 꽉 막혀 나아갈 수가 없게 되자 정씨는 갑자기 차의 방향을 돌려 중앙선을 넘었고 그 순간 달려오던 택시 옆면을 들이받았다.이때 출근길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났고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당황한 정씨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멈춘 뒤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타 도망을 시도했으나 오토바이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때 정씨는 칼을 쥐고 있었다.

▼ 격투끝 체포… 1계급 특진 ▼

정씨는 계속 다리를 절룩거리며 도망가다 이번에는 개인택시를 위협, 탑승했으나 뒤쫓아온 주순경이 정씨의 다리를 향해 권총을 한발 발사하며 권총 손잡이 부분으로 정씨의 허리와 머리를 서너 차례 내리쳐 제압했다. 이때가 오전 7시23분. 1시간7분의 도주극은 막을 내렸다.

167㎝ 60㎏의 작은 몸집이지만 태권도 3단에 합기도 1단인 그는 이 순간 ‘작은 거인’이었다. 주순경은 정씨를 검거한 포상으로 이날 경장으로 1계급 특진되는 것과 함께 자신이 바라왔던 은평경찰서 형사계로 발령받았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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