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작전-문책인사 파장]술렁이는 검찰

  • 입력 2000년 2월 12일 23시 35분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12일 “이날 하루동안 두 번이나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 대한 심야의 긴급체포 ‘작전’ 소식을 듣고 놀랐고 이어 ‘작전’이 실패한 책임을 물어 수사책임자들을 전격 문책한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는 것이다.

다른 검사들도 “두 사건 모두 전혀 예측할 수 없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사태였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관계자들은 조직내부에 이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미뤄볼 때 앞으로 정의원 체포 및 수사를 둘러싸고 자칫하면 통제할 수 없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긴장하는 분위기다.

▽문책 내용과 경위〓문책 대상이 된 서울지검장과 서울지검 1차장, 공안1부장은 검찰의 핵심 요직. 이들을 한꺼번에 문책한 것이다.

문책의 내용도 상당히 강하다. 1차장과 공안1부장을 고검으로 전보 조치한 것은 검사에게는 거의 치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은 이밖에 11일 밤의 ‘작전’에 동원된 일선 수사관들도 문책할 것으로 알려졌다.

더 중요한 대목은 문책의 과정과 배경. 12일 오후 3시 대검에서 문책 소식이 알려진 후 기자들이 당사자인 1차장을 찾아가자 그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는 “내 인사를 어떻게 법무부장관이 아닌 검찰총장이 하는가”라며 의아해했다.

또 법무부 핵심 관계자들도 “법무부 장관도 아무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이번 문책인사는 ‘통상적인’ 과정을 거쳐 단행된 것이 아니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닮은 꼴의 ‘작전’과 ‘문책’〓일부에서는 문책 인사도 긴급체포 작전과 마찬가지로 정치권, 권력핵심과의 교감을 거쳐 전격적으로 단행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나돈다.

검찰은 1차 ‘작전’이 실패로 끝난 12일 오전에도 “통상적인 법집행이었으며 검찰 외부와는 어떠한 연락이나 협의도 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검찰의 ‘작전’은 상식과 명분을 중요시하는 ‘통상적인’ 법집행과는 너무 다르다.

검사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작전을 감행한 이유가 납득이 안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사건 내용을 거의 모르는 다른 부서의 수사관들을 작전 1, 2시간전에 소집해 도상 연습도 없이 무모하게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에 따라 이번 ‘작전’은 검찰의 자체 판단에 따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권의 주문 또는 지시에 따라 ‘갑작스럽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번 일이 검찰의 정상적인 보고 라인을 거치지 않고 극비리에 추진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문책인사도 이처럼 정치권과의 사전교감 또는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많다. 특히 대검 관계자가 “정의원 체포 시도라는 ‘작전개시’가 아니라 ‘작전실패’의 책임을 물었다”고 밝힌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작전과 문책 모두 정치권에서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수사전망〓검찰은 초강경 태세다. 검찰은 당장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2차 체포작전에 돌입했으나 실패했다. 앞으로 검찰이 정의원을 체포할 경우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난관도 많다. 무엇보다 정의원이 자택이 아닌 한나라당 당사에 은신하고 있어 체포가 쉽지 않다. 또 한나라당의 요구로 14일부터 임시국회가 열릴 경우도 큰 문제. 임시국회가 소집되면 곧 현역의원의 불체포특권이 발동되는 등 ‘방탄국회’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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