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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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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사기혐의로 구속된 김성진씨(42)의 초기 수법은 부유층 투자이민 희망자를 속여 거액 뜯어내기. 김씨는 병원장, 개인사업가 등 부유층에 접근해 “미 이민국(INS) 국장 출신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며 69명으로부터 11억2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지방의 Y병원 박모원장은 김씨의 말만 믿고 초기 투자금으로 3억1000여만원을 순순히 내놓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김씨를 ‘철석같이’ 믿었던 데는 김씨가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했던 일리노이주 주(州)검사 출신이란 점이 작용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이민간 김씨는 완벽한 영어와 한국어에다 세련된 몸가짐으로 주위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 수사관계자는 “김씨가 본인 주장대로 89년까지 시카고 주검사였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년간의 검찰생활을 정리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92년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면서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사결과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미국에서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과거 경력을 이용한 돈벌이가 손쉽게 이뤄지자 더욱 대담한 ‘사업’ 구상을 떠올렸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인천시를 방문해 자신을 미국계 R벤처 캐피털 대표로 소개하며 “인천 송도 신도시개발을 위해 거액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접근했다. 실제로 최기선(崔箕善) 시장은 같은 해 4월 유럽출장 길에 뉴욕에 들러 1주일간 머물면서 김씨를 만나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 양해각서와 유력 정치인과 찍은 사진, 송도 사업용 영문 팜플렛은 김씨의 경력에 덧붙여져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김씨는 지난해 말 국무총리, 주한 외교사절 등이 참석한다는 송도 프로젝트 선포식 초대장 등을 들고다니며 병원 영안실 영업권, 신공항배후도시 사업권을 미끼로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경찰청 수사과 관계자는 “현재 김씨가 국내 S사에 3억달러(약 3400억원)의 외자를 유치하겠다며 접근한 사실을 파악해 수사중”이라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