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소동 시간별 재구성]주민 '죽음공포' 14시간

  • 입력 2000년 1월 5일 20시 00분


경기 파주시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 폭파소동’으로 4일 밤과 5일 새벽사이 14시간동안 인근 월롱면 일대는 전쟁상황처럼 공포에 휩싸였다.

캠프 에드워드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가 파주시에 통보된 것은 4일 오후 7시10분경. 보고 직후 캠프 에드워드를 방문한 송달용(宋達鏞)파주시장은 미군측으로부터 “미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캠프 내에 폭발물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을 접했다.

캠프내 미군들의 긴박한 움직임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송시장은 곧 경기도청에 이같은 사실을 보고했다.이어 경찰과 소방공무원 1300여명과 고성능화학차 등 장비차량 100여대가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긴급한 주민대피령이 내려진 것은 그로부터 몇시간뒤였다.

5일 오전 1시반경. “급히 대피하십시오. 전 주민은 인근 초등학교로 급히 대피해 주십시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고방송이 경기 파주시 월롱면 영태 4,5리에 울려 퍼졌다.

잠결에 방송을 들은 주민들이 눈을 비비며 하나둘씩 깨어났다. 평소 캠프 에드워드의 훈련 사이렌 소리를 종종 들어온 주민들은 경고방송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2∼4분 정도에 그치던 사이렌소리가 10분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다.

“실제상황입니다. 인근 미군부대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빨리 대피하십시오.” 계속되는 경고방송에 마침내 주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도 난 건가.” 주민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10여명의 주민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승용차에 올라타자 남은 주민들의 움직임도 숨이 가빠졌다.

“전쟁이 났다.” “Y2K문제로 부대가 폭발한다.”

영문을 모르는 주민들 사이에 근거없는 말들이 퍼져나갔고 ‘죽음의 공포’가 삽시간에 마을을 덮쳤다. 이불 하나 챙길 틈 없이 주민들은 허겁지겁 외투만 챙긴 채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오전 3시경 영태1∼3리 주민들까지 대피소인 월롱 및 영도초등학교에 합류하면서 대피 주민은 3000명을 넘어섰다.

무슨 일인지,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은 차디찬 교실 맨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공포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한 일부 주민들이 승용차에 시동을 걸고 그 안에서 밤을 보내는 바람에 영도초등학교 운동장은 60여대의 차량이 뿜어내는 하얀 연기로 휩싸였다.

폭발물 첩보를 파주시가 접수한지, 그리고 미군이 모두 대피한지 5시간30분 후인 오전 4시경에야 “4일 오후 미군부대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소식이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주민들 사이에선 “미군이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먼저 빠져나가다니 말이 되느냐” “행정관청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는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미군부대가 폭발하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걱정도 들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조차 어른들의 굳은 표정을 눈치 챈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집과 삶의 터전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TV뉴스를 지켜보며 밤을 지새웠다.

오전 9시반경 “상황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교내방송이 울려퍼지면서 “폭발물소동이 거짓말로 끝났음을 알게 됐다.

‘공포의 밤’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미군들의 파렴치한 처사와 행정관청의 한심한 대응조치에 주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파주=권재현 이완배기자>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