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유출 수사]'박주선처리' 검찰 고민

  • 입력 1999년 12월 12일 23시 06분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법무비서관에 대한 2차소환이 임박했던 11일 수사팀과 수뇌부간에는 미묘한 갈등기류가 감지됐다.

수뇌부와 수사팀의 회의 직후 이날 오전 예정됐던 수사상황 브리핑이 돌연 취소됐다. 수사팀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고 일부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퇴근해 버렸다. 신광옥(辛光玉)중수부장 등 수뇌부도 굳은 표정이었고 취재진의 질문에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오후 3시경엔 느닷없이 차동민(車東旻)대검공보관이 “박전비서관을 12일 오전 10시 소환한다”고 기자실로 알려왔다. 수사기획관을 대신해 공보관이 수사일정을 브리핑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

‘수사팀의 대변인’격인 이종왕(李鍾旺)수사기획관은 12일 “수사팀과 수뇌부간에 마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검찰 안팎의 관측은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수사팀과 수뇌부의 갈등은 수사 초기부터 내재돼 있었다.

수사팀은 “온갖 거짓말이 옷로비의혹을 1년 가까이 증폭시켰고 전직 검찰총장이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게 했다. 국민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며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반면 수뇌부는 더 이상의 파장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총선을 앞둔 여권뿐만 아니라 검찰 조직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는 인식이 퍼져있고 박전비서관에 대한 동정론도 만만찮기 때문.

이같은 시각차는 박전비서관의 신병처리를 놓고 극명하게 드러났다. 수뇌부에서 동정론을 거론할수록 수사팀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 하는 모습도 이따금 보였다.

청와대 등 여권 일각과 검찰 수뇌부는 박전비서관에 대해 ‘너무 아까운 인물이다’ ‘도덕적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며 사법처리만은 피했으면 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수사팀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라는 대의(大義)앞에서는 어떠한 고려나 예외도 있을 수 없다”며 수뇌부를 ‘압박’하고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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