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理 투캅스’ 부하는 술집서 돈뜯고 상사는 물증없애

  • 입력 1999년 10월 21일 00시 14분


‘영업정지를 당한 단란주점 업자를 찾아가 잘봐주겠다며 열흘이 멀다 하고 돈을 뜯어낸 경찰관, 이런 경찰관의 비리를 적발하고도 처벌하기는커녕 업자의 상납장부를 파쇄하는 등 사건은폐에 급급했던 감찰관.’

‘일그러진 경찰의 한 단면’이다.

서울 서부경찰서 E파출소 소속 P순경이 관내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P씨(43·여)를 처음 찾아간 것은 3월 중순. 당시 P씨는 접대부를 손님자리에 앉혔다는 이유로 2개월 영업정지를 당한 상태였다.

P순경은 “영업정지 기간에 장사하려면 파출소에 잘 보여야 한다”며 20만원을 뜯어냈다.

P순경은 그 후 열흘이 멀다하고 업소를 찾아가 돈을 요구했다. 요구 명목도 가지가지였다.

“파출소 동료들에게도 돈을 줘야 한다” “회식이 있다” 심지어 “선 보러 가는데 차비가 필요하다”며 뜯어간 적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3월부터 7월까지 뜯어낸 돈은 모두 10여차례에 걸쳐 250만원.

그러나 “단속은 걱정 말라”는 P순경의 장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7월 접대부 고용사실이 적발돼 P씨는 300만원의 벌금을 내고도 영업허가가 취소돼버렸던 것.

P씨는 억울했지만 P순경을 탓할 수도 없었다. P순경이 잘못해 업소가 문을 닫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

그 후 우연히 한 정보형사의 귀에 P순경의 비리가 들렸다. 그가 관내 유흥업소 주인들에게서 상습적으로 돈을 뜯어낸다는 첩보였다.

서울 서부경찰서 감찰계의 조사가 시작됐고 P순경의 비리는 사실로 확인됐다. P순경이 돈을 요구할 때마다 P씨는 요구이유와 액수, 건넨 장소 등을 꼼꼼히 수첩에 기록해놓았기 때문.

그러나 경찰은 P순경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리고 뇌물을 준 경위를 꼼꼼히 기록한 P씨의 수첩도 없애버렸다. 당초 수첩을 복사해갔던 이 경찰서 L감찰계장은 뒤늦게 “수사에 필요하다”며 수첩 원본을 가져간 뒤 아예 파쇄기로 갈아 없애버렸던 것.

이에 대해 서울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관례상 비위경찰관이 사표를 제출하면 형사처벌 없이 수사를 마무리지어 왔다”며 “수첩을 없앤 사실에 대해서는 뭐라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사표를 낸 P순경의 해명을 듣기 위해 그가 근무했던 서울 서부경찰서 E파출소와 본서 등에 연락처를 문의했으나 “P순경이 외부에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는 입장이어서 그의 해명은 직접 듣지 못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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