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 3학년때 장애인 아버지마저 잃은 채 혼자 어렵게 살아온 손양은 중학교 2학년때부터 3개월에 40만원씩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준 후원자들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열었다.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들은 영옥이가 고마움과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거릴 때 졸업후 진로(進路)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우리와 함께 일하자”는 제의였다.
6일 LG화학 면접을 치른 손양은 8일부터 치약제조 파트로 첫 출근을 했다. 비슷한 환경의 소녀가장 권정은(權貞恩·19)양도 회사의 제의에 응해 이날 후원자들과 같은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LG화학 직원들이 소년소녀가장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1년. 직원들은 사내 아이디어 모집에 응모해 채택될 때 받는 5백원, 1천원짜리 소액 상품권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모금함을 설치하고 한장 두장 모으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모은 상품권 액수가 70만∼80만원. 직원들은 당시 손양이 다니던 중학교에서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소개받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사내에 퍼지면서 10여명으로 출발했던 이 모임은 지금 후원자 수가 1백여명으로 늘어났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영옥이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면접장소까지 따라왔던 담임 조정자(趙貞子·38)교사는 제자를 딸처럼 보살펴온 직원들에게 회사를 떠나며 감격의 눈물에 젖은 감사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였던 후원 활동과 고3이 된 영옥이의 진로 문제 때문에 찾아 온 그 분들을 보았을 때, 정말이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과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의 영옥이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늘 건승하길 기원합니다.’
직장인으로 새출발한 2명의 소녀가장은 출근 첫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사내 소년소녀가장 후원회의 새내기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제는 같은 처지의 후배들을 도울 때”라며 두 사람은 밝게 웃었다.
〈이 훈기자〉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