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강산 관광세칙

  • 입력 1998년 11월 9일 19시 10분


북한이 현대측에 제시한 금강산 관광세칙은 관광객들에게 부과하는 의무와 처벌규정이 지나치다는 여론이다. 길가 주민이나 군인들과는 사진촬영도 함께 할 수 없고 관광차량의 음향마저 외부로 새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에서부터 용변에 관련된 것까지 일일이 벌과금을 정해 놓았다. 실화(失火)로 산불이 나면 피해면적당 엄청난 벌금에다 묘목대금과 노력값도 따로 내야 한다. 북측이 제시한 관광세칙대로라면 구경은 커녕 내내 긴장에 싸여 몸조심만 하다 돌아올 판이다.

남한 관광객들에게 신경을 과도하게 쓰는 북한의 입장은 이해해야 할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남쪽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관광의 문’을 연다. 그것도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개방한다. 폐쇄적인 북한사회에 관광이란 형태의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당국으로서는 체제유지를 위해서도 빈틈없는 대책이 절실할 것이다.

더구나 북측의 세칙은 관광객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수칙들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관광객이라면 어디를 가든 질서를 지키고 문화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금강산관광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은 북한사회의 특수성까지도 감안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 도에 지나친 돌출행동은 모두에게 해를 입힌다. 북측을 탓하기에 앞서 그동안 우리의 관광행태도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이 관광객들의 자율적인 질서를 강조하기보다 처벌위주의 세칙을 강요하려 들 경우 금강산관광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비싼 관광비용에다 강압적인 분위기까지 조성된다면 누가 선뜻 관광길에 나서겠는가. 관광객수가 줄면 외자유치에 열중하는 북한에도 이로울 게 없을 것이다. 현대도 그렇지만 북측도 금강산관광사업이 단순한 영리사업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이 민족의 염원인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 18일 금강산관광길에 오를 관광객들을 보면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 45.7%나 된다. 금강산관광에는 1천만 이산가족들의 꿈과 한(恨)이 서려 있다.

현대와 북측은 관광세칙을 놓고 막판 협상에 들어간 모양이다. 현대측은 관광선 출항 하루 전인 17일까지 북측과 합의를 끝내겠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때문에 졸속 합의를 해서는 안된다. 관광선 출항에만 급급하다 보면 신변안전문제 등 더 큰 분쟁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 금강산관광사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관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한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고 국제관례에도 맞는 관광세칙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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