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오명철/운동권가요의 「변신」

  • 입력 1998년 7월 21일 19시 36분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70, 80년대 대학생들의 애창곡중 하나였던 김민기 작사 작곡의 ‘상록수’. 애잔한 곡조와 가슴저린 가사로 그 시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노래다.

양희은이 부른 이 노래는 특히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려 78년 세상에 나오자마자 ‘정치성이 짙다’는 이유로 7년간 금지곡이 된 ‘운동권 가요’의 고전(古典)이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는 이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반정부 활동’이요 ‘불온’으로 간주되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 이 노래가 국무총리 산하 공보실이 전개하고 있는 ‘정부수립 50주년 TV 캠페인 광고’에 등장했다.

공보실 관계자는 “이 노래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자신감을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는 시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정부가 펼치는 제2건국의 취지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주제음악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오늘의 30,40대가 대학 재학 시절 온갖 역경 속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를 되새기며 현재의 국난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곡을 선택했다”는 것이 캠페인 광고를 기획제작한 LG애드측의 설명이다. 양희은도 취지에 호응, 새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김민기가 이 노래를 만든 것은 77년말. 부평의 어느 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던 그는 동료 노동자들이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은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작정, ‘늦깎이 부부’들의 결혼식 축가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상록수’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젊은이로서 다시한번 이 노래를 읊조리며 ‘시대적 소명’을 생각해본다.

오명철<사회부차장>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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