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독자와 만난 동아일보]김일수 교수

  • 입력 1998년 4월 6일 19시 27분


“김빠진 술 맛 아시죠?”

독자 김일수(金日秀·52·변호사)고려대교수.

동아일보 민병욱(閔丙旭)정치부장 김충식(金忠植)사회부장을 앞에 놓고 뜬금없이 술 얘기를 꺼낸다. 조짐이 심상치않다고 느낀 듯 마주보는 두 부장.

“요즘 동아일보를 읽다보면 그런 밋밋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혼란기엔 언론이 일정한 철학을 갖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절실하잖아요. 그러기엔 동아일보의 논조가 미흡하다는 겁니다.”

물꼬 터진 비판. 신문을 한장 한장 넘기며 이어진다.

“우선 정치 얘기 좀 할까요. 언론은 권력과 적당한 거리를 갖고 창조적 긴장관계를 이뤄야합니다. 하지만 지금 권력과 너무 밀월관계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묵묵히 듣고 있는 정치부장을 외면한 채 계속되는 채찍.

“북풍사건만 해도 그래요. 뭔가 논리에 안맞고 감추어져 있는게 많은 것 같은데 그걸 파고들지 못해 아쉬워요. 정치적 혼돈이 신문에 그대로 중계될뿐 언론이 명확히 밝혀주는 건 드물어요. 결국 대부분 정치논리에 의해 결말지어져버리고 말죠. 밀월관계때문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안보나 국가와 관련된 사안이라고 언론이 스스로 조절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신문은 그렇다쳐도 동아일보마저 진실을 찾아 파헤치는게 안되는 겁니까?”

“정보의 부족때문이겠죠”라고 해명하면서도 두 부장 모두 고개를 끄덕.

“사설도 그래요. 평이한 문체로 부담없이 읽히는 건 좋아요. 하지만 곪아 터지기 전에 비전을 갖고 한발 앞서 문제를 짚어주는게 부족해요. 요즘같은 ‘위험사회’에선 언론이 한발 앞서서 위기의 조짐을 포착해야 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가 닥치기 2,3년전 이미 그 징후가 있었지만 학자들은 물론이고 언론도 책임있는 경보기 역할을 못했잖습니까. 논조에서도 양비론적 인상을 받습니다. 지지할 건 분명히 지지하고 비판할 건 분명히 비판해야 합니다.”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인 김교수. 서서히 화살을 기자정신과 사회면으로 돌린다.

“기자정신도 예전같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엔 기자의 날카로운 글 한편이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곤 했는데 요즘은 논조도 평준화하고 조율돼 있어요. 재벌신문, 상업주의의 영향때문인지 경영마인드에 길들여져 가는 것 같습니다. 사회면에도 바랄게 많습니다. 이제 대량 실업시대에 아주 어려운 사회상황이 될 겁니다. 그럴수록 사회면 한곳엔 오아시스, 쉼터가 있어야 합니다. 희망의 논조를 잃지 말아야지요.”

여러 신문을 꼼꼼이 읽는다는 김교수. 가로쓰기 지면개편에 대해서도 충언을 한다.

“올들어 문화 스포츠 여성 등 예전에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부분에서 다른 신문들을 다 제칠만큼 성과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동아일보 특유의 힘, 우리 사회의 대표 언론으로서 혼돈속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보입니다. 즉 가정 여성 문화같은 ‘묘목’이 자라다보니 동아일보의 정체성이라는 ‘거목’이 가려진 것 같아요.”

김교수는 특히 언론이 개별 정권과의 관계에 지나친 무게를 두지않기를 간곡히 당부했다.

“동아일보가 국민의 신문, 민족정론지라는 초심을 잊지 않고 나름대로의 거대한 원칙을 세워 나가기 바랍니다. 언론의 생명은 특정 정권과 비교할 수 없이 장구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리〓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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