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삶 연세대 김현식군『컴퓨터는 내 닫힌몸의 窓』

입력 1998-03-14 20:56수정 2009-09-2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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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마다 새 순이 돋는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들도 있다.

봄 기운이 용솟음치는 연세대 캠퍼스.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로 살아가는 한 젊은 컴퓨터 공학도는 오늘도 면학의지를 불태우며 강의실을 지킨다.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올해 연세대 기계전자공학부 1학년에 입학한 김현식(金顯植·20)씨. 전신이 굳어져 듣고 보고 말하는 것 외에 기껏해야 손가락을 까닥거릴 힘밖에 없다.

그는 어머니 장의상(張義相·44)씨의 도움을 받아가며 캠퍼스에서 컴퓨터프로그래머의 꿈을 이루기위해 하루하루를 ‘여생’처럼 살고 있다.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한 교실에서 계속 수업을 듣다보니 어머니가 계속 붙어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강의실을 옮겨다녀야하는 대학에선 어머니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는 주변 학우들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탄채로 옮겨지거나 어머니 등에 업혀 계단을 오르내린다.강의실에서도 어머니가 쥐어주는 책과 펜을 놓칠세라 꼭 붙들고 강의를 듣지만 필기속도가 워낙 느려 번번이 학우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도 일주일 17시간의강의를 꼬박 다 듣는다.

김씨는 근육이 조금씩 마비돼 몸을 점차 가눌 수 없게 되는 희귀병인 진행성 근육병(PMD)을 앓고 있다. 영국의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고 있는 신경퇴화증과 증상이 비슷하다. 심하면 호흡근육까지 마비시켜 목숨을 앗아간다. 한국에서만 1만5천명정도의 환자가 있지만 악성인 경우는 25세를 넘기기 힘들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다리에 힘이 없어 쓰러지면서 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때 걷기를 포기했다. 옷을 갈아 입거나 화장실에 가는 일, 심지어 숟가락질까지 도움을 받아야했다.

김씨는 “모든게 천천히 진행됐기 때문에 어느날 문득 ‘아, 내가 할 수 없는 게 또 하나 늘었구나’하고 깨닫곤 한다”며 웃었다.

컴퓨터는 그런 그에게 유일한 학습도구이자 즐거움이었다. 체중이 40㎏밖에 안나가는 그가 휠체어에 앉아 볼펜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컴퓨터를 통해 ‘꿈’을 좇는다. 컴퓨터를 마주하는 순간만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삶의 무력감도 없다. 다만 어머니와 주위사람들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저는 목소리가 작아서 옆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들에게만 간신히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도와주기 위해 손길을 내밀어주는 많은 친구들에게 마음속으론 늘 큰 목소리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혀마저 조금씩 마비현상이 오고있는 김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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