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부형권/어느 고아원장의 「겨울나기」 시름

  • 입력 1997년 9월 24일 19시 41분


「저 많은 대기업 은행 등에서 5만원씩만 도와주면 우리 애들이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을텐데…」.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중턱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서정자(徐貞子·70·여)원장은 요즘 해맑은 가을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있는 명동거리의 고층건물을 내려다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남들은 선선한 가을날씨가 좋다지만 서원장은 아침 저녁으로 한기(寒氣)를 느낄 때면 「혹시 감기 들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58명의 「손자 손녀」 얼굴색을 살피며 애를 태운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그럭저럭 견디지만 어린 초등학생들은 벌써 추위를 느껴요. 지난 해까지만 해도 연료비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매년 가을이면 후원자들이 『추석이 가까워 오는데 뭘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어오면 서원장은 늘 『정부에서 주는 연료비가 충분치 않으니 기름을 좀 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겨울나기에 필요한 기름 뿐만 아니라 각계에서 보내 온 과일과 과자가 넉넉한 편이었던 남산원의 가을살이는 장기화하고 있는 경기불황의 짙은 먹구름에 가려 이제는 옛 추억처럼 돼 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넓은 마당을 가득 채웠던 그 많은 후원자들은 간 데 없고 올해는 구청 어머니회 등 몇몇 기관에서 의례적인 방문을 했을 뿐이다. 자매결연까지 해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했던 몇몇 은행 기업 등은 어린이날에 이어 이번 추석에도 아무 연락이 없다. 『서울 중심가에 있는 우리가 이런실정인데변두리나 지방에 있는사회복지시설은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나마우리는 추석 때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후배」들과놀아 줘큰 위안이 됐지만…』 서원장은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절실한 게 결코 돈만은 아닙니다. 정과 사랑이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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