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
이번 사건은 김현철 피고인이 한보사건에 깊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라는 국민적 여망에 의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결과 드러난 것입니다.
피고인으로서는 표적수사나 여론재판이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불만에 앞서 자신이 왜 여론의 의혹과 질타를 받게 됐는지, 그리고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는지를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특별한 신분을 이용해 기업인들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거액을 수수한 피고인의 행위는 어떠한 변명도 용납될 수 없으며 일반 국민과 소외계층의 불만과 불이익을 가중시켜 국민적 화합과 단결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고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건설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국가원수 아들을 구속, 기소까지 하게 된 이번 사건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아닐 수 없으며 일반 국민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심어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국가원수의 아들일지라도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는다는 법치주의가 이 나라에 살아 있음을 보여줬고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는 성과를 얻게 됐다고 자부합니다.
▼ 피고인 김현철 관련 ▼
가. 사실 및 증거관계(1)
김덕영 관련부분에 대하여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김덕영으로부터 신한투자금융 주식반환청구소송과 관련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사실은 김덕영의 법정 및 검찰에서의 진술, 피고인의 일부 자백에 의해 충분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김덕영의 진술에 의하면 1993년 3월 김덕영은 피고인에게 『신한투금 소송이 빨리 종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했습니다. 김덕영은 피고인으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서면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청탁내용을 요약한 문건을 피고인에게 전달했습니다.
피고인은 김덕영이 보낸 문건을 본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나 박태중의 진술에 의하면 이 문건을 피고인으로부터 교부받아 보관하다가 검찰에 압수되었으며 문건이 들어있는 봉투 겉장과 내부서류에는 「김영수」수석이라고 쓴 사실이 있습니다. 그 문건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거짓이라 하겠습니다.
피고인은 또 설사 김덕영으로부터 신한투금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덕영이 피고인에게 부탁한 「재판을 신속하게 끝낼 수 있게 해주고 외부의 압력을 막아달라는 것」은 결국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으로 명백히 법관의 직무에 속한 사항에 대한 청탁이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피고인이 김덕영의 부탁을 단순한 애로사항을 토로하는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청탁을 하면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하더라도 그 뜻은 충분히 전달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다음 피고인이 김덕영으로부터 받은 돈의 대가성 여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김덕영으로부터 받은 금품은 순수한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피고인은 김덕영으로부터 신한투금소송과 관련한 청탁을 받은 후 불과 2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월정금 형식으로 6천만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또 3억원을 받은 시점도 대법원의 최종 승소판결로부터 3개월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이므로 피고인에게 건네진 돈은 신한투금소송과 관련한 청탁 및 사례금 명목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또 3억원은 김덕영측과 국제그룹 전회장 양정모와의 사이에 신한투금 주식을 둘러싼 새로운 분쟁이 시작돼 피고인에게 이와 관련한 청탁명분을 모색하고 있던 시기에 건네진 것으로 김덕영은 향후 청탁을 보다 부드럽게 하기 위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2)이성호 관련 부분에 대하여
피고인은 이성호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과 일부 청탁을 받은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대가성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먼저 피고인은 이성호로부터 93년 12월∼95년 12월까지 매달 5천만원씩 받은 것은 이성호에게 실명전환을 의뢰한 50억원에 대한 이자명목으로 청탁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호의 진술에 의하면 반환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피고인측에서 반환을 요구할 경우 언제라도 반환해야 했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맡겨 이자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성호는 대통령의 아들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피고인에게 자신의 애로사항을 해결해달라고 청탁하거나 이를 들어준데 대한 사례금 명목으로 5천만원씩 준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다음 피고인은 이성호로부터 청탁을 받은 바 없으며 이성호가 청탁을 했다 하더라도 단순한 애로사항이나 고민을 말하는 것으로 가볍게 받아들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호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청탁한 사항은 단순한 고민이나 애로사항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사항을 간곡히 부탁한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이성호의 청탁내용을 보더라도 종합유선방송 사업권 취득같이 커다란 이익이 걸려있거나 자기 아버지와 장인의 형사처벌문제 등 이성호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습니다.
다음 피고인은 그와 같은 청탁이 있었다하더라도 이는 이성호로부터 받은 금전적 도움과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성호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에게 준 돈은 자신의 애로사항에 대한 청탁 및 사례금 명목이라는 것이며 그 액수가 17억여원에 달하고 그외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은 금액도 적지 않아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아무런 조건없이 건네진 것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피고인은 스스로도 자신이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성호가 그와 같은 거액의 금품을 자신에게 제공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제공받았다면 그 대가성은 충분히 인정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피고인과 이성호의 관계를 보면 피고인은 자신이 대통령의 아들로서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외부에 알려진 것을 이용, 이성호로부터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습니다.
또 이성호는 피고인의 영향력을 기대하면서 피고인에게 자신의 애로사항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3)조세포탈 부분에 대해
피고인이 증여세 소득세를 포탈한 사실은 피고인의 법정 및 검찰수사과정에서의 진술 등에 의해 충분히 증명됐습니다. 피고인은 조동만 신영환 곽인환 등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세탁된 헌수표로 받거나 받은 돈을 10여개 이상의 차명계좌에 은닉시킨 사실 등에 대하여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조세포탈의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93년 10월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50억원을 이성호에게 부탁하여 불법실명전환한 이유에 대해 실명신고를 할 경우 국세청에 자금의 출처를 소명해야 하는데 이성호는 건설회사를 경영하였기 때문에 자금출처를 대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같은 시기에 별도의 50억원을 안기부 운영차장으로 있던 김기섭에게 부탁하여 실명전환하게 한 사실이 있는 바 이는 안기부차장을 내세워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막아보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이는 피고인이 국세청의 자금추적조사 그리고 그에 따른 세금부과를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피고인 스스로도 일정한 수입이 없는 자신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자금출처에 대한 조사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차명계좌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 사실상 조세포탈의 범의를 자백하고 있습니다.
다음 피고인은 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헌수표를 수수하여 자금출처를 은닉한 행위가 조세범처벌법에 규정된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자금의 원천이 외부에 드러나는 사업자나 근로자와는 달리 극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은밀하게 돈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본인이 자진하여 과세관청에 신고하거나 타인으로부터의 제보가 없는 한 과세관청에서 세원을 포착하여 조세를 부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경우 과세관청의 세무조사에 의해 납부해야 할 세금이 있는지 여부를 밝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주된 이유도 과세관청의 세무조사를 보다 실효성 있게 함으로써 공평과세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읍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제삼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수수할 때 철저히 세탁된 헌수표로 교부받거나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증여나 소득사실을 은폐하였다면 이는 「과세관청의 조세부과 징수를 위한 조사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행위」로서 조세범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나.정상관계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이후부터 본 재판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비리에 대하여 상황에 따라 진술을 그때그때 번복하고 있음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비리를 『국가원수의 원만한 국정수행을 돕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취지의 변명을 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피고인이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금전의 일부를 여론조사비 등에 사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사회경험이 별로 없는 피고인을 유혹하여 범법행위를 유발시킨 기업인이나 그러한 사회적 폐습에도 일말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피고인의 행동은 오히려 국가원수의 국정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판명되어 사회적 혼란과 많은 부작용을 야기시켰습니다.
▼ 피고인 김기섭관련 ▼
피고인은 지금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고 또 자수까지 한 사실이 있습니다만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이라는 국가의 막중한 직책을 수행하면서 기업인으로부터 청탁과 관련한 금품을 수수한 행위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김현철 피고인의 심부름이나 출처가 분명치 않은 자금의 세탁에 관여하고 활동비 조달까지 한 것은 참으로 한심한 처사가 아닐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 맺음말 ▼
이번 사건은 가장 깨끗해야 할 권력 핵심인사들에 의해 저질러진 부정부패사건으로 우리 국민 모두에게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들에게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다시는 이러한 부끄러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