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3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는 이례적으로 피고인 호칭문제를 둘러싸고 변호인간 공방이 전개돼 눈길.
정재철(鄭在哲)피고인의 변호인인 황상현(黃相顯)변호사는 권노갑(權魯甲)피고인측 변호인인 천정배(千正培)변호사가 증인신문과정에서 권피고인과 정태수(鄭泰守)피고인에게는 「권노갑의원」 「정태수총회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정재철피고인」이라고 부르자 『증인을 왜 「피고인」이라고 호칭하느냐』며 재판부에 정정을 요구. 이에 대해 재판장인 황인행(黃仁行)부장판사는 『이유있는 지적이니 호칭을 통일하라』고 지적.
○…권피고인의 변호인은 이날 증인으로 채택된 정재철피고인을 상대로 검찰의 공소사실을 공격하기 위해 카폰 통화내용 등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
이석형(李碩炯)변호사는 정피고인에게 『96년 10월7일 하얏트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권피고인이 나타나지 않자 집으로 전화를 걸어 「권의원에게 전화 오면 호텔 로비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는 메모를 남긴 적이 있느냐』 『그리고 10여분 뒤 권의원에게서 커피숍 카운터로 전화가 와 「호텔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는 게 사실이냐』고 질문.
이변호사는 정피고인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권피고인의 카폰에는 증인의 집으로 통화한 기록이 없다』며 의문을 제기.
정피고인은 『카폰인지 공중전화 또는 일반전화인지는 모르지만 권피고인이 집으로 전화를 건 것은 사실이다』고 주장.
이날 정피고인은 재판부의 허락을 받아 약을 먹기 위해 재판정을 잠시 벗어나기도 했는데 황변호사는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정피고인의 비서관에게 『몸상태가 안좋으니 좀 쉬었다 들어오라』고 조언.
○…홍인길피고인의 변호인인 소동기(蘇東基)변호사는 최후변론을 통해 『홍피고인의 범죄는 개인의 악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관행과 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홍피고인은 최고통치자의 곁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오던 필요악적인 존재였다』고 주장.
권노갑피고인의 변호인인 이석형변호사는 『홍피고인의 변호인처럼 낭만적인 변론을 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라고 운을 뗀 뒤 『권피고인이 받은 돈 2억5천만원은 1심 재판부가 규정한 정당한 정치자금의 요건에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
○…홍피고인은 이날 『일본 메이지유신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행적을 그린 소설 「대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구치소에서 또 한번 읽었다』며 『이 책의 교훈처럼 정치지도자가 뜻을 펴는데 받침돌이 되고자 평생을 노력해 왔다』고 주장.
그는 또 『구치소에서 「용의 눈물」의 원작소설을 읽고는 정치지도자에게 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우쳤고 지금 (김영삼대통령 주변에)그런 좋은 참모들이 얼마나 있는지 반성해 봤다』고 부연.
〈이호갑·신석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