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박장 현지취재]한국인은 라스베이거스의 「봉」

  • 입력 1997년 8월 21일 20시 32분


재벌2세와 연예인 등 일부 부유층 인사들의 해외원정 도박으로 아까운 외화가 펑펑 새나가고 있다.

특히 카지노의 대명사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봉」으로 대접받으며 돈을 물쓰듯 쏟아붓는 「큰손」들은 수십만∼수백만달러 규모의 고액 도박을 일삼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한국수표 환전」 「한국부동산 담보융자」 등 갖가지 수법을 동원한 현지 사채업자들을 통해 한번에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빼돌려 카지노에 탕진하고 있다.

현지 교민 권모씨(35)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얼마든지 한국에 있는 돈을 현지에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미라지 호텔 카지노의 한 블랙잭 테이블. 한 동양인이 카드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결과는 딜러의 승리. 동양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 그것 참…』

한국인이었다. 그는 한 시간도 채 안돼 5천달러를 잃었으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슷한 시각 카지노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바카라룸. 한 사람이 하룻밤에 수십만달러씩 잃기도 하는 고액 손님 전용룸이다.

동양인이 전체손님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카지노 관계자는 『한국인 큰손들이 이곳의 주요고객』이라고 귀띔했다.

카지노를 몇바퀴 둘러보는 동안 마주치는 한국인들의 특징은 고액 베팅이 이뤄지는 카드게임에 주로 몰려있다는 점. 인근 다른 호텔 카지노도 사정은 비슷했다.

미라지 호텔은 그 가운데 재벌2세 연예인 등을 비롯,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신분노출을 꺼리는 유명인사들의 경우 호텔의 비밀룸이나 자신이 묵고 있는 방에서 도박을 즐긴다.

몇년전 선배가 호텔방에서 바카라를 하는 현장을 목격한 이모씨(30)는 『선배는 딜러와 1대1로 대결을 벌였으며 한 판에 수십만달러씩 오갔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인 「봉」들이 돈을 쏟아붓자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은 한국인 직원을 고용하는 등 한국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이들 카지노에서는 김, 리, 정, 장 등의 명찰을 단 딜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호텔마다 한국인 딜러는 전체 딜러의 10% 내외.

최근에는 한국인들의 원정 도박바람이 미국 동부 애틀랜틱시티, 중서부 센트럴시티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코리안 저널」은 최근호에서 『애틀랜틱시티의 도박업소에서는 동양인하면 한국인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최소 판돈이 얼마인지 알려주는 한국어 안내판이 나붙었으며 현금자동지급기에는 영어 스페인어 외에 한국어로도 자막이 떠오르게 해놓았을 정도라는 것.한국인들의 이같은 무절제한 도박에 대해 라스베이거스 한 호텔관계자인 조모씨(50)는 『서양인은 갬블을 「게임」하듯 즐기는데 반해 한국인은 「도박」이라고 여기고 죽기 살기로 덤비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금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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