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아버지」의 유서

  • 입력 1997년 7월 14일 20시 17분


『너희들 5남매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또한 자부심으로 여기면서 참으로 너희들 때문에 어깨를 펴고 세상을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을 마음껏 누리다가 이제 회한없이 간다』 13일 오후 8시45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S병원 7층 대회의실 복도에서 목을 매 숨진 Y공고 교사 趙成國(조성국·59·강원 영월군)씨. 다음달 퇴직을 앞둔 조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말기 증세를 보인 간암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조씨가 아내와 1남4녀 앞으로 남긴 노트 5쪽 분량의 유서에는 한 줄 한 줄마다 애틋한 부정(夫情)과 부정(父情)이 배어있었다. 조씨의 첫마디는 엄격했던 자식교육에 대한 후회. 『5남매를 세상에 남기면서 따뜻한 정을 남기지 못한 채 오직 훈계로만 키워온 나날이 후회스럽구나』 곱게 자라준 자식들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다. 조씨는 맏딸에게 『너의 작은 어깨 위에 기대어 살아온 나날들이 참으로 기뻤다』며 『아무리 자식이라곤 하나 이 큰 빚을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적었다. 둘째딸에게는 『네게만은 너무 혹독했지만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미안해 했다. 막내아들(23)에게는 한 페이지 가득 인생선배로서의 충고를 전했다. 『이 세상은 착하기만한 네가 살아가기에 꼭 좋은 세상만은 아니다. 때로는 강한 면도 있어야 하고 빠른 판단력도 있어야 한다. 어린 너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함을 죄스럽게 여기면서 떠난다』 구구절절 자식들 걱정을 적어내려가던 조씨의 눈앞에 문득 외손자들이 비쳤던 것일까. 『참으로 신기한 것은 고것들의 늘어가는 재롱이었다. 고것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조씨는 아내에게 짧지만 애정과 회한이 듬뿍 담긴 한 마디를 남겼다. 『먼저 가게 되는 나를 용서하시오. 나는 평생을 당신 때문에 편하게 살아온 사람이오. 그 많은 은혜의 일백분의 일도 갚지 못하고 떠나는 나는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밖엔 할말이 없구려. 고맙소. 정말 고맙소』 〈금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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