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씨 재미있는 답변]『서울여성 말 못알아듣겠다』

  • 입력 1997년 7월 10일 20시 24분


『원래 동화(童話)를 매우 좋아해 여기 와서 30권 정도 읽었다』 북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골격을 세운 黃長燁(황장엽)씨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80일간의 서울생활을 설명하며 동화책 얘기를 꺼내 좌중에 가벼운 웃음을 자아냈다. 황씨는 이날 회견에서 주체사상의 「전도사」로서 국제적인 학술세미나 등에서 쌓은 관록을 토대로 북한 엘리트 지식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는 시종 여유있는 태도로 기자들의 질문요지를 꼼꼼히 메모해가며 잘 듣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질문은 되묻는 치밀한 성격을 드러냈다. 그는 한 여기자의 질문을 받고 『여기 와서 TV도 많이 보고 했는데 여성들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면서 옆에 앉은 金德弘(김덕홍)씨에게 「통역」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황씨 회견에서는 과거 북한 귀순자들이 「일 없습네다」를 연발하며 「고기국에 이팝」을 강조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황씨는 「창의성」을 「창발성」으로 얘기하는 등의 몇가지 표현상 차이와 약간의 북한식 억양을 제외하고는 서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다소 곤혹스러운 질문에는 잠시 이마에 손을 얹고 고민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시종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의 답변 가운데는 변증법적 논리전개 방식이 배어나오기도 했다. 그는 우선 金正日(김정일)의 성격이나 사생활 등을 묻는 질문에 『큰 흥미 없다』『그런 시시한 문제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받아쳤다. 또 그는 사상전향여부에 대해 『북한을 버리고 남한으로 온 것과 북한이 나를 반역자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도 『한국땅은 조국의 땅인데 무슨 적합한가, 부적합한가, 이상적인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김정일에게 다시 가란 말인가, 아니면 외국으로 가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김덕홍씨는 황씨를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충실한 「보조자」로서 황씨의 사상편력 등에 대해 적절한 비유를 섞어가며 보충 설명했다. 김씨는 계급투쟁론에 대한 황씨의 입장에 대해 『한 민족 아래 잘사는 사람도 있고 못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한 어머니 아래 잘사는 자식과 못사는 자식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하며 황씨를 적극 변호했다. 〈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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