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고장나 1시간 이상 서있는데도 승객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고 태연히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런던에서 만난 유학생 韓素美(한소미·28)씨는 지난 92년 지하철 고장으로 터널안에 갇혔을 때 승객들의 차분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영국인들이라고 왜 무섭지 않았겠느냐』며 『행정당국을 믿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걸핏하면 집단행동을 벌이는 우리와는 달랐다』고 말했다.
1백여년의 역사를 헤아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 지하철의 전동차나 역사는 낡은 부분이 많다. 런던지하철 피커딜리선의 일부 전동차는 아직도 바닥이 마루로 돼있다. 시설이 낡은만큼 정차사고 인명사고 등의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지만 큰 사고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용객의 시민의식이 높고 당국의 대처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의 김병호영사도 지난해말 중심가역인 콘스타블러바케역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역구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와 이를 제지하는 청년이 시비를 벌이다 청년이 할머니를 떼밀어 선로쪽으로 떨어졌다. 역무원들은 즉각 전동차운행을 중단시키고 할머니를 구해내 응급조치를 했다. 어느 시민이 재빨리 신고했는지 10분도 안돼 앰뷸런스가 도착, 할머니를 싣고 떠났다. 갑자기 벌어진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 얼마나 질서정연한지 놀라울 뿐이었다.
선진국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지하철구내 에스컬레이터 이용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릴때 오른쪽에 서는 것은 상식화 돼있다. 바쁜 사람들은 비어있는 왼쪽을 이용해 빨리 걷든 뛰든 무방하다. 작은 일 같지만 「원칙」을 지켜 남을 배려하는 시민의식의 발로다.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에는 검표대가 없다.그러나 표를 사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시민들은 없다.
교통당국의 솔직한 태도와 편의시설에 대한 배려도 시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지하철 정차사고가 나면 「어떤 이유로 정차사고가 발생했고 언제쯤 출발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이 꼭 나온다. 프랑크푸르트시는 역구내까지 자전거를 끌고다닐 수 있는 시설과 노약자나 장애자들을 위해 지상에서 직접 승강장까지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안전문제에 대한 선진국 지하철의 대응은 철저하다. 지하철과 버스를 통합 운영하는 파리교통공사(RAPT)는 시민안전을 위해 인공위성을 활용할 정도다. 안전관리담당 디미오는 『위성을 이용해 1천2백명의 안전경찰과 요원을 사고지점에 5분내에 도착토록 하는 안전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역에는 전동차가 달리는 철로구간과 승강장 사이에 유리문을 설치, 안전사고를 막고 있다. 이같은 안전시스템은 버스 자동차 등 지상교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프랑크푸르트는 시내버스에 장애자가 휠체어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장치를 해놓고 있다.
런던의 지브라(Zebra)라인도 또 다른 예. 주로 건널목에 설치한 보행자를 위한 구역으로 얼룩말 무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평생동안 면허가 정지될 정도로 벌칙이 강하다.
도시철도공사 尹斗榮(윤두영)사장은 『우리의 시설은 선진국 못지 않다』며 『시민의식이나 운영소프트웨어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런던·프랑크푸르트〓윤양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