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의 6월항쟁은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6월항쟁이후 10년동안 우리사회의 중산층은 어떻게 변모해왔는가. 6월항쟁의 정신은 오늘 어떻게 살아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려 가야 하는가. 좌담회를 통해 이를 짚어본다.》
[참석자=서진영(고려대교수·정치학) 한상진(서울대교수·사회학)박원순(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김근태(국회의원·국민회의 부총재)]
▼徐鎭英(서진영)교수〓87년의 6월항쟁은 역사적 변환기에 발생했습니다. 이때는 세계적으로도 민주화로의 이행과정이었습니다. 다만 필리핀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전복, 대만에서는 위로부터의 포섭이 이뤄졌지만 6월항쟁은 특이한 모델이었습니다. 시민사회에 기반한 세력과 집권세력의 타협과 조정을 통한 평화적 이행이었습니다.
▼韓相震(한상진)교수〓진정한 민주화의 핵심은 밑으로부터의 변화요구를 어떻게 결집시켜 제도개혁을 이루느냐에 있습니다. 4.19이래 6월항쟁은 공통의 목표로 광범한 민중연합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입니다. 주요세력은 청년과 학생이었지만 군사독재청산 요구에 많은 집단이 정서적으로 동조했고 행동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연합의 힘으로 전환기에 있을 수 있는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朴元淳(박원순)변호사〓6월항쟁은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개발과 성장중심에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나 「삶의 질」로, 권위주의에서 다원주의로 가는 분수령이었습니다. 4.19에 비해 6월항쟁은 노동자 지식인 등 「넥타이부대」의 가세가 확연했고 그래서 서구의 시민운동과도 가까운 형태가 됐습니다. 6월항쟁은 적어도 군부가 병영에서 더이상 나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박정희신드롬」 경계해야>
▼金槿泰(김근태)부총재〓오늘의 정치적 상황을 규정하는 6월항쟁의 10주년을 열정과 축제의 분위기로 맞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냉소적이기까지한 기류가 있습니다. 「박정희신드롬」도 그 하나입니다. 4.19가 5.16으로, 80년 「서울의 봄」이 광주사태로 반전(反轉)된 역사가 있습니다. 6월항쟁이후 10년간 결정적 반전은 없었지만 반전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있습니다.
▼서교수〓「물결이론」이 있습니다. 운동이나 사조(思潮)에 고조기가 있으면 퇴조기가 따릅니다. 6월항쟁도, 4.19도 조직화된 세력이 주도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를 제도화하거나 구체적 현실로 만드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국민적 혁명이라는 의미는 갖지만 서구 시민운동과 달리 계층적 세력적 의미는 갖지 못했고 그만큼 대안에 취약했습니다. 6월항쟁정신의 퇴조에는 이런 배경도 있습니다.
▼한교수〓사관(史觀)의 문제도 있습니다. 지도 엘리트들은 근대화를 주로 경제성장위주로 봅니다. 젊은 층에서마저 「박정희향수」가 일어나는 현상을 우리는 주의깊게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근대화는 이런 일면적 과정이 아니라 양면적 흐름입니다. 빈곤에서 해방되는 경제성장에 못지 않게 정치나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각 집단의 주체의식회복과 사회참여가 다같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6월항쟁은 일시적 퇴조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박변호사〓6월항쟁은 「호수」였습니다. 항쟁의 주도 또는 가담세력이 조직화됐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성장해온 각 분야의 사회세력들이 함께 했고 바로 이 「호수」를 통해 다시 더 큰 방향으로 흘러 갔습니다. 6월항쟁이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아직 미약하지만 시민운동의 다양화 저변화가 이뤄져가고 있습니다. 정치영역에서도 젊은 엘리트들이 꾸준히 진입해 변혁의 토대는 이뤄졌다고 봅니다.
▼김부총재〓리더십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6월항쟁은 군사쿠데타나 1인 장기집권은 더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큰 성취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 지배세력은 적나라한 폭력과 공포 대신에 말과 돈으로 국민대중을 분리, 분할지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역패권주의 영향력의 지속과 그와 연관된 갈등이 심화됐습니다. 리더십이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교수〓리더십과 시민사회의 발전속도에는 상당한 갭이 있습니다. 이런 불일치가 무수한 정치적 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김영삼정부도 개혁과 세계화를 강조하며 시민사회의 변화에 부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현실과의 괴리에서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구질서에 익숙한 정치 엘리트들은 변화의 당위성은 알지만 그들의 행위는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가 어느 정도 일치하기까지는 정치적 위기나 불안정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6월항쟁은 「미완의 혁명」>
▼한교수〓80년대 운동을 주도했던 젊은이가 이제 30대가 되고 운동에 공감했던 30대는 40대가 됐습니다. 젊고 합리적인 중산층의 핵심은 바로 이들입니다. 이들은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자기표현 민주주의, 그리고 참여에 적극적입니다. 중산층 안에서도 개혁을 원하는 세력이 뚜렷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조사를 통해 나타납니다. 이런 개혁지향적 중산층을 저는 중민(中民)이라 부릅니다. 이들의 힘이 도도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노동관계법 안기부법 날치기처리에 따른 금년초의 노동운동은 중민적 유연성을 발휘한 좋은 보기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요.
▼박변호사〓6월항쟁은 미완(未完)의 혁명입니다. 민주주의를 제약했던 많은 악법이나 제도, 그 운용을 뒷받침했던 관행과 의식, 사람의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 6월항쟁의 정신은 지속적인 운동과 실천 속에서 실현돼야 합니다.
▼김부총재〓지난 30여년간 경제성장은 지시경제 불균형성장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6월항쟁은 그런 패러다임으로는 더이상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은 전통적 엘리트 관료체제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도 리더십은 이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못하고 지시경제의 청산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좌절됐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21세기에 대한 불안과 정서적 「짜증」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오래 가면 정치적 위기의 구조적 만연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서교수〓저는 긍정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우리 역사는 꾸준히 진보해왔습니다. 모든 부문에서 지배집단의 리더십과 개혁세력의 대립이 일어났으나 리더십이 끊임없이 개혁세력을 포섭하면서 파국을 피하는 독특한 형태를 띠어왔습니다. 김대통령은 역설적으로 정치개혁을 이뤄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대통령 자신을 포함해 「구정치세력은 안된다」는 의식을 확산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한국당에서 초선의원이나 무선(無選)이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9룡(九龍)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혁명적 상황입니다. 이번 대선을 통한 집권세력은 국민의 요구를 일정수준에서 포섭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교수〓6월항쟁에는 보다 투명한 정치와 사회를 만들자는 국민적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역주의정치 보수대연합 등으로 이 의지는 굴절, 희석됐습니다. 지난 10년간 집권세력의 협소한 통치기반과 이념 때문에 6월항쟁정신은 사실상 주변화(周邊化)됐습니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은 한없이 커졌고 젊은 지식인 집단은 한때 무절제한 급진화 경향을 보였습니다. 6월항쟁정신은 집권층의 점진적 포섭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변호사〓6월항쟁정신은 군사독재의 붕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해를 제거하려는 의식입니다. 이런 정신은 부분적으로 반전되고 도전받아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다. 김영삼정부는 개혁을 시도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부닥쳤습니다. 시민의식은 정상궤도에 올랐으나 사회적인 세력이 형성되지 못해 발전속도가 늦고 때로는 후퇴합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전체 노동자의 13%에 불과한 것이 이를 말해 줍니다. 「시민없는 시민운동」도 그렇습니다.
<권력집중 조직 경직시켜>
▼김부총재〓금년초 날치기정국이 반전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힘과 세력이 명백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4.19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의 바탕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부분적인 역전(逆轉)이 있었지만 민주세력은 힘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집권세력의 정직성과 참여민주주의, 개방적 민족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6월항쟁정신이 구체적 성과로 열매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여권은 피로(疲勞)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교수〓개혁의 에너지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입니다. 김대통령의 개혁실패도 개혁주도세력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을 포함,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새로운 개혁적 리딩그룹들이 형성돼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당면과제입니다. 정치적 세대교체론도 그런데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한교수〓개혁세력을 별도로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진입한 젊은 세대의 합리적 요구와 가치관이 반영되도록 조직의 집중화된 권력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6월정신의 실질적 계승이자 개혁입니다. 저는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번 대선은 구시대 리더십이 각축하는 마지막 장입니다. 대선이 지나면 사회 각 부문에서 광범한 체질개선과 구조개편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박변호사〓개혁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지난(至難)한 노력이 계속돼야 합니다. 시민운동의 척박한 토양에서 때로는 날마다 절망하지만 이런 노력을 지속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김부총재〓성서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믿음을 갖는 것이 큰 믿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정치적 리더십의 교체는 좋은 전기(轉機)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양영채·하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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