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盧씨 공판 판결문 요지]비상계엄확대의 불법성

  • 입력 1997년 4월 17일 20시 45분


그런데 1980년 5월17일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 등 관계법령에 의하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제11조 제12조 제13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고,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은 지역계엄실시와 관련하여 계엄사령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되므로(제9조), 군부를 대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됨은 물론 국방부장관이 계엄업무로부터 배제됨으로 말미암아 계엄업무와 일반국정을 조정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마저도 배제됨으로써,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받는 강압의 효과와 그에 부수하여 다른 국가기관의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된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의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범죄는 「어느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는 자」를 이용하여서도 이를 실행할 수 있으므로(형법 제34조 제1항), 내란죄의 경우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가 그러한 목적이 없는 자를 이용하여 이를 실행할 수도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12월12일 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후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미쳐 국권을 사실상 장악하는 한편,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한을 사실상 배제하고자 하는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 선포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위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선포함으로써 외형상 적법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인들에 의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하고, 또한 이는 피고인들에 의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러한 목적이 없는 대통령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간접정범의 방법으로 내란죄를 실행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 바,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 (나)비상계엄 선포나 확대의 법률요건 구비 여부는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므로, 이 사건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가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주장.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 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과 같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이 사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다)내란의 모의와 실행행위에 가담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 원심은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하고,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1980년 5월 초순경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한 후,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상의하는 방법으로 이를 검토·추진하기로 모의하였으며, 그 계획에 따라 같은 해 5월17일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의 체포로부터 시작하여 1981년 1월24일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사이에 행한 일련의 폭동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그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가지고,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기로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모의함으로써 이미 내란집단을 형성한 것이며, 이를 기초로 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계기로 계엄군의 위력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내란의 범의를 실현시켜 나가면서, 내란집단의 구성원 상호간의 연락과 용인하에 위와 같은 일련의 내란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가사, 피고인들이 위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이를 모의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전체로서의 내란에 포함되는 개개의 행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라도 그 모의에 참여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기여하였음이 인정되는 이상, 하나의 내란을 구성하는 위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내란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 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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