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한보부실대출 과정]이사회 결정따라 『대출적격』

입력 1997-03-30 20:03수정 2009-09-2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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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서정보기자] 한보철강 대출이 실무자들의 반대의견이 무시된 채 「윗선」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한보 대출이 근본적으로 부실대출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검찰이 전현직 시중은행 임원들에 대해 업무상배임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관심을 끌고 있다. 제일은행의 경우 검찰조사를 받은 朴錫台(박석태)상무, 여신총괄부 심사역 김모씨, 신탁부 안모차장 등의 진술을 종합하면 실무자들은 지난해 4∼12월 네차례에 걸쳐 2천억여원의 대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했다. 지난해 4월, 11월, 12월 세차례 대출심사의견서를 작성한 심사역 김씨는 검찰조사에서 『당시 한보철강의 부채비율이 854%로 급증해 추가 대출보다 대출금 상환문제를 더 염려해야 할 형편이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그러나 『대출신청이 있을 때마다 박상무가 「계속 지원해주라」고 지시해 어쩔 수 없이 대출적격의견으로 심사의견서를 작성해 올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출심사의견서를 작성한 안씨도 『대출이 곤란한 상황이었으나 박상무로부터 「이미 이사회에서 결정이 났으니 적격의견으로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적격의견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조직의 생리상 상사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던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검찰관계자는 전했다. 검찰은 이들이 대출심사의견서를 자신들의 판단과 달리 적격의견으로 작성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대출심사과정에서 대출 부적격의견으로 판정이 나면 곧바로 대출불가결정으로 이어지면서 이사회에 대출신청건이 아예 상정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대출심사의견서를 적격의견으로 작성토록 한 것은 대출심사가 요식절차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두 사람에게 대출적격의견을 올리도록 지시한 박상무는 이에 대해 자신도 대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박상무는 『한보철강의 부채가 자본의 세배가 넘어 대출금 상환에 위험성이 항상 내재해 있었고 李喆洙(이철수)행장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행장은 철강산업이 국가기간산업이란 이유를 들어 대출을 밀어 붙였다』고 주장했다. 박상무는 『상무인 내가 행장 앞에서 대출해줘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거액의 지속적 대출이 부실대출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는 것. 한편 조흥은행도 지난해 초부터 대출과정에서 실무자들이 반대의견을 내는 등 제일은행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검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전 여신통할부장 이모씨는 검찰에서 『지난해 3월 한보측에서 1천억원을 대출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담당심사역 오모씨가 「한보측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며 반대의견을 내는 등 대출이 곤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禹찬목 전조흥은행장은 『지난해초 한보측이 자체조달키로 한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할 때부터 자금사정이 좋지않다는 생각은 했으나 실무자들로부터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받은 적은 없었다』고 진술,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申光湜(신광식)전 제일은행장도 『한보철강의 재무구조가 부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철수행장 때부터 대출이 이뤄져 공장 완공때까지 담보를 확보하기 위해 지원이 불가피했다』며 이전행장에게 책임을 미루는 태도를 보였다고 검찰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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