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사조직]모든 길은「小山」으로

  • 입력 1997년 2월 26일 20시 15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25일 대국민담화에서 차남인 賢哲(현철)씨에 대해 사실상 「접근불허」와 「각종 공사(公私)활동중단」 방침을 천명하자 정치권은 물론 관계(官界) 금융계와 군부(軍部) 등 권력권내에서 「김현철인맥」의 거취문제가 집중 대두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있다.이같은 분위기는 그만큼 그동안 김씨의 권력권내 영향력이 막강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치권▼ 이른바 「김현철사단」의 막강한 파워는 이미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해왔다. 정부 고위직 인사와 국회의원 공천과정 등에서 김씨와 그의 측근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여권내 정설이다. 김씨가 김대통령의 아들이라기보다 핵심정치참모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 대선패배 직후부터다. 당시 상도동캠프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김씨는 여론조사팀인 중앙조사연구소를 만들어 집권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이후 김씨의 참모활동은 정치활동으로 확장됐고 92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김현철인맥」은 급속히 세를 키워나갔다. 중앙조사연구소를 확대개편한 민주사회연구소의 인맥은 嚴涍鉉(엄호현)현방송개발원장, 김씨의 중대부중동기인 朴泰重(박태중)심우대표 등이 핵심. 교수 등 각계 전문가 50여명으로 구성돼 상도동의 「싱크탱크」인 「동숭동팀」을 이끌었던 田炳旼(전병민)씨도 핵심브레인이다. 전씨는 현대사회연구소의 소장직으로 복귀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여권내 반발이 심하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朴在潤(박재윤)전통상산업부장관 鄭鍾旭(정종욱)주중대사 廉弘喆(염홍철)공항관리공단이사장 등도 동숭동팀 멤버로 알려져 있다. 또 朴世逸(박세일)청와대사회복지수석 李珏範(이각범)청와대정책기획수석 등도 전씨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92년 대선 당시 YS의 양대 사조직이었던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는 김씨와 가까운 金武星(김무성)신한국당의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조직. 김씨는 나사본의 재정담당에 박태중씨를 앉혔다. 또 서울 여의도 S빌딩에 사무실을 차린 나사본산하 청년대책반에서는 김씨와 가까운 金榮春(김영춘)신한국당 광진갑지구당위원장과 K전청와대정무비서관 등이 활동했다. 김대통령의 집권 이후 김씨의 사조직은 여권핵심부의 요직을 거의 장악하다시피했다. 청와대에는 정무 의전 등 핵심부서에 김씨 측근들이 집중 포진했으며 작년말부터는 C씨 등 사조직멤버들이 일제히 청와대로 입성했다. 현정권출범 이후 김씨 인맥의 양대축은 이른바 「광화문팀」으로 알려진 언론대책반(언대반)과 金己燮(김기섭)안기부운영차장, 李性憲(이성헌)신한국당 부대변인 등 학생운동출신의 30대 소장파들로 진용을 갖춘 광화문팀은 매일 언론동향 논조분석 대응방안을 보고서로 작성, 김대통령에게 제출했다는 것. 또 언대반은 중요 현안이 터질 때마다 정국대처방안 관련 보고서를 김대통령에게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권내에서 널리 알려진 김씨의 핵심측근은 김기섭차장. 그는 여권내에서 「좌기섭 우기섭」이라고 불릴 정도로 김씨와 가까웠다. 김차장은 현정부출범이후 안기부의 예산과 인사를 장악하고 각종 정보를 사적으로 김씨에게 제공하는 「채널」 역할을 해왔다는 게 여권내 정설이다. 김씨는 이같은 고급정보를 독점, 자기 영역을 구축하기 위한 결정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김차장은 김씨를 등에 업고 여권내 실세로 소문이 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신한국당내의 영향력도 막강했다. 지난번 개각 때 한 중진의원이 시내 음식점에서 저녁식사중이던 김씨를 찾아가 『총리를 시켜달라』고 읍소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연욱기자〉 ▼경제부처▼ 정부부처중 경제관련부처의 반응이 특히 민감하다. 김씨가 그동안 장차관급 등 고위직 인사에 깊숙이 개입해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처 관료사이에서는 심지어 『상식을 벗어난 인사상의 우대를 받는 사람은 일단 김씨와 연관을 시켜보면 대부분 맞았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과천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2,3년전 현철씨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며 『경복고 출신을 중심으로 각 부처에 인맥이 형성돼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고위관리는 『장차관 가운데 상당수는 현철씨에게서 전화가 오면 스케줄을 조정해가면서까지 만난다고 들었다』면서 『주요 경제부처의 간부급에 대한 외부 인사청탁은 K, C씨 등 민주계 중진들로부터 많이 왔지만 가끔 「소장님」(현철씨를 지칭)것이라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직 장관중에서는 지난번 개각 때 의외로 발탁된 A씨와 K씨가 평소 김씨와 가까이 지내며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것으로 소문 나있다. 또 청와대 비서관에서 1급으로 승진하면서 과천 본부진입에 성공한 C씨, 해외주재관에서 본청 요직으로 진입한 N, K씨 등도 비슷한 소문의 대상이다. 전직각료 출신으로 금융계에 있는 L씨, 이번 한보사태로 조사를 받았던 또다른 L씨 등도 김씨와 가까운 것으로 평이 난 인물들이다. ▼금융계▼ 금융기관 인사에도 김씨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금융계내의 일반적 시각이다. 몇년전부터 김씨 그룹에서 K씨가 한국은행총재가 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김씨의 영향력으로 행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금융계 인사는 한보철강 채권은행중의 하나인 C행장. 그는 개각 때마다 하마평에 거론되는 등 한때 잘 나갔으나 한보철강에 거액부실여신을 해줬다는 이유로 25일 은행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았다. 금융계는 한보사태이후 그동안 행장선임 등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민주계실세들이 숨을 죽이고 있고 김씨마저 활동을 중단하게 돼 이달말과 내달초에 집중된 은행주총에서의 인사가 「영향력의 공백」 상태에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회평·백승훈·허승호 기자〉 ▼군부▼ 군부내 김씨 인맥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김씨의 영향력이 군부내에서도 상당한 정도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씨가 군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6공말부터이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것은 지난 93년 「하나회」 척결을 전후해서라는 게 군부내 정설이다. 이른바 「소산(小山·김씨를 지칭)계 별」로 불리는 군수뇌부들이 군인사와 주요보직에서 김씨와 협의한 사례가 많았다는 얘기가 매년 정기인사 직후만 되면 터져나오곤 했다. 이들 소산계 장성은 그동안 군인사를 통해 새로운 인맥을 구축, 과거 「하나회」의 폐해가 되살아났다는 내부비판을 받기도 했다. 군일각에선 김씨의 활동중단 발표가 현정권하에선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차기정권에서 제2의 군부숙정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산계로 군부내에 알려진 대표적 인물은 K전국방장관 등 4명. K전장관은 현정부 출범초기 「하나회」장성 제거과정에서 김씨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현재도 정보기관의 장으로서 군부인사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것. 경복고(K2)동문인 K국방장관도 김씨와 연계,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거치는 등 승승장구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같은 K2동문인 K군단장(육군중장)과 군정보기관의 고위장성으로 경남출신인 L중장도 김씨와의 접촉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황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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