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처리 惡役 吳부의장 『가족 모아놓고 이해구했다』

  • 입력 1996년 12월 26일 20시 24분


吳世應(오세응)국회부의장은 경기 성남시 분당의 자택을 떠나 지난 21일부터 닷새간 장급 여관을 전전했다. 안기부법개정안 등의 처리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국회의장단 억류작전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여관전전 엿새째인 26일 새벽 국회본회의장에 나타나 의사봉을 쥐고 안기부법개정안 등을 기습처리하는 「악역」을 해냈다. 오부의장은 호텔 방을 잡지 않은 이유를 『사람들의 눈에 띌까봐 분당 인근의 하루 5만원짜리 장급 여관을 잡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전기사와 차도 돌려 보냈다. 대신 인천 번호의 아들 친구의 아버지 차를 빌렸다. 그러면서도 徐淸源(서청원)원내총무와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서총무가 보낸 「밀사」가 여관을 다녀가기도 했다. 성탄절인 25일에는 분당의 지구촌교회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독창했고 이날밤 늦게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26일 새벽의 본회의장 사회에 대비했다. 오부의장은 『이런 일에 대비, 임시국회 폐회 전날인 17일 가족들을 모아 놓고 내가 「악역」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해를 구했다』고 밝혔다. 오부의장은 안기부법 등의 여당단독처리후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임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노동법은 경제회생을 위해, 안기부법은 국가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부득이 변칙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인권이 탄압받던 시절에는 야당의 실력저지가 영웅시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야당의 비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게 그의 변이다. 그러나 그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선진국(미국)에서 정치학 공부를 한 사람으로 새벽 6시에 국회를 열어 법안을 기습처리한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18일 63빌딩에서 야당의원들에게 억류됐을 때 행동이 소극적이었다는 당내 비판에 대해 그는 『국회에 들어가서 법을 통과시킬 분위기도 아닌데 무조건 몸싸움이나 하라는 건 곤란하다』며 여야간에 물리적 충돌없이 일이 끝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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