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종교/영생교집단촌]봉제공장서 하루13시간 노동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7분


영생교 신도들의 집단 거주촌인 경기 부천시 계수동 305에는 현재 신도 30여명이 살고 있다. 주로 50∼80대인 이들 신도들은 노인들을 제외한 전원이 부천시 역곡2동의 승리제단 부근에 있는 「근화실업」이라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대지 1천5백평에 달하는 집단 거주지에는 빈집을 포함해 32채의 가옥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영생교 신도들은 매일 오전 6시에 승합차를 타고 역곡2동 승리제단에 가서 합동예배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후 오전 8시반부터 밤 9시까지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승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들은 집부근의 야산을 개간한 밭 9백여평에 양파 시금치 배추 등을 심어 채소류는 전부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 땅은 영생교의 대모로 알려진 洪業飛(홍업비)씨의 아들 3형제의 공동소유로 되어 있다. 영생교도가 아닌 홍씨의 막내아들 崔在吉(최재길·45)씨의 부인 黃英福(황영복·43)씨는 『그동안 땅 소유권을 내놓으라며 영생교도들에게 시달린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흥분했다. 이곳에 집단촌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부터. 영생교도였던 홍씨의 큰아들 崔春吉(최춘길·56)씨가 신도들을 하나둘씩 끌어모으면서 집단촌이 형성됐다. 그러나 영생교의 대모로 알려진 홍씨도 지난 84년12월 몽둥이로 맞아 의문의 시체로 발견됐다. 이후 홍씨가 쓰던 집은 빈집으로 방치됐다. 지난 95년2월 경기 용인군 용인읍 쓰레기매립장에서 발견된 소문종씨도 이곳에서 폭행당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빈집은 감금 폭행의 아지트로 활용돼왔다고 주민들은 진술했다. 〈이천〓田承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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