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규진]“女중사 안죽었다면 커질 사안 아니다”라는 상관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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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성범죄 파문]

신규진·정치부
신규진·정치부
“사망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커질 사안은 아니라네요….”

육군의 여군 A 중사는 7일 기자에게 성추행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중사 사건 이후 자신의 부대 상관들이 하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이어 “이런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데 어떻게 군에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대다수 여군은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대 내에서 여군에 대한 ‘외부인화’가 더욱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공군의 여군 B 대위는 “부대에서 암묵적으로 여군이 배제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을까 두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직속상관의 성희롱으로 여군 장교가 목숨을 끊는 사건 등을 계기로 군 당국은 2015년 ‘성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성폭력 가해자 퇴출과 이를 묵인한 담당자도 처벌토록 하는 종합대책이 나왔지만 일찌감치 공염불이 됐다. 여군들은 성범죄 발생도 문제지만 수사 과정에서 회유나 협박 등 2차 가해가 일상화된 점을 더 큰 문제로 꼽는다.

성폭력 사건을 가볍게 여기는 군 내 인식은 성폭력 사건처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선 제2, 제3의 이 중사가 나오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군사경찰은 “하지 말아 달라”는 이 중사 음성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하고도 피의자 장모 중사를 불구속 상태로 한 차례만 조사했다. 2차 가해를 했다는 상관들이 수사조차 받지 않으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비정상도 반복된다. 군 관계자는 “살인 등과 달리 성폭력 사건은 으레 그렇게 처리돼 왔다. 부실수사가 일상화된 것”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1일 뒤늦게 국방부 검찰단을 중심으로 합동수사단을 꾸린 군 당국이 정말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군을 배제하고 민간에 수사를 넘겨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4월 7일 장 중사가 송치된 뒤 55일 동안 피의자 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군 검찰도 부실수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통령까지 나섰으니 처음에만 난리치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죠.” 불신으로 가득 찬 B 대위의 말이 씁쓸해지는 이유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여중사#상관들#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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