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9일 ‘전세금 인상’ 논란에 휩싸인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하루 만에 전격 경질한 것은 그간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시한부 유임’ 신세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처럼 문 대통령은 그동안 경질 요구가 빗발쳐도 인사 교체를 서두르지 않았지만, 김 전 실장의 경우 곧바로 경질을 택했다. 그만큼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느끼는 부동산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당정청은 이날 각종 부동산 투기 방지책을 쏟아냈고, 더불어민주당은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납작 엎드렸다.
● ‘내로남불’ ‘꼼수’ 비판에 전격 경질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어젯밤 김 전 실장이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사임의 뜻을 전했고 오늘 아침 문 대통령에게도 직접 사의를 밝혔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7월 전월세상한제 시행 직전 강남구 아파트의 전세금을 14% 올렸다.
김 전 실장은 “거주 중인 서울 성동구 아파트 전세금 상승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청와대 내부 여론도 돌아섰다. 청와대 내에서는 “정책을 입안하는 청와대 경제사령탑이 5% 전·월세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날 오후에는 문 대통령 주재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내놓는 ‘반부패정책협의회’가 예정돼 있던 상황. 부동산 부패 청산 정책의 영(令)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청와대가 김 전 실장을 서둘러 경질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 분노’를 세 차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부패 청산이 지금 이 시기 반부패 정책의 최우선 과제임을 천명한다”며 “야단맞을 것은 맞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정책만큼은 국민들로부터 엄혹한 평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매도 매우 아프다”며 “지금을 우리 정부에 대한 부동산 정책 평가를 반전시킬 마지막 기회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 선거 앞둔 민주당 ‘전전긍긍’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김 전 실장의 경질에 앞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친문(친문재인) 진영 핵심인 김종민 최고위원은 “정부와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따랐다가 손해 봤다고 느끼는 국민들, 상대적 박탈감을 겪게 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더 심각한 것은 정부·여당의 잘못된 자세, 태도였다. 오만과 무감각이 국민들 마음에 상처를 줬다”고 했다. 양향자 최고위원도 “부동산 정책에서의 아쉬움, 광역단체장들의 성희롱 문제 등 잘못과 무능에 대해 진솔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에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제공되는 각종 혜택의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겠다”며 “(총부채상환비율·주택담보대출비율 등) 우대 혜택을 현재보다 높이고 소득기준이나 주택 실거래가 기준 등도 현실화할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실수요자에 대한 규제 완화로 들끓는 민심을 어떻게든 달래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정책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정책실장마저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이면서 민주당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특히 2019년 6월 취임한 김 전 실장은 이른바 ‘임대차 3법’ 등 정부의 부동산 입법을 총괄해 왔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의) 유임보다 경질이 낫지만, 문제는 이런다고 여론이 수습이 될지 모르겠다”며 “그동안 억눌렸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둑이 무너지듯 한꺼번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여권 내에서는 “이러다 임기 말까지 ‘부동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여당 의원은 “다주택자를 규제하기 위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무주택자, 1주택자까지 힘들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획기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재·보궐선거는 물론이고 내년 대선까지도 부동산 이슈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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