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봄날’에 숨겨진 북한의 심리상태 [이호령 박사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8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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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남한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관계는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16일 김여정은 담화문에서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3년 전 봄날’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연결고리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내세우고 있지만, 담화문 발표 시기와 내용을 보면 미국 바이든 정부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방한에 즈음한 착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북한은 왜 ‘3년 전 봄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 김정은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북중, 남북, 북미, 북러 등 일련의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지만, 이를 국가간 관계발전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3년 전의 봄날’ 은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통한 평화와 번영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반대로 핵미사일 능력고도화와 자력갱생을 들고 나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이번에 ‘3년 전의 봄날’이라는 화두로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에는 눈을 감고 ‘그 좋았던 기회의 시절’을 되뇌고 있는 것이다.

둘째, 왜 북한은 3월 16일 오전에 김여정 담화문을 발표했는가. 한미연합훈련은 8일부터 시작됐지만, 담화문은 3월 16일 미일 외교·국방장관 2+2 회담이 개최되는 날 나왔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보다는 미일간, 한미간 외교·국방장관 2+2 회담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예상보다 빠른 템포에 당황한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는 잠정 국가안보지침(Interim NSS Guidance)을 통해 미국이 국제무대로 돌아와 외교와 동맹관계를 회복할 것임을 알렸다. 쿼드 정상회담과 미일 2+2 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반복해서 다뤘고, 한미일 3자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미일 2+2 회담을 앞두고 지난 2월 중순부터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과 접촉을 시도해왔지만, 아직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밝혔다.

셋째, 북한은 왜 조평통과 금강산국제관광교류국 등 대남 관련 기구들의 정리가능성을 언급했을까. 김정은 집권기간 동안 남북간 대화와 교류 및 협력이 활성화됐던 기간은 짧았고 경색국면은 길었다. 그나마 대화는 통전부와 국무위원회를 통해 진행됐지, 위상이 약화된 조평통은 소외되었다. 2019년 김정은 총비서가 금강산 관광지구를 찾아가 남측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진 금강산국제관광교류국은 남북교류의 주요 기구라고 볼 수 없다. 8차 당대회 이후 조직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내부의 움직임을 대남 압박에 은근슬쩍 활용한 것일 수 있다. 지난 6월 김여정 담화를 통해 밝혔던 대적사업, 즉 남북 연락사무소 폐지, 금강산 관광 완전 폐지, 개선공단 완전 철거, 9.19 군사합의 파기 등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요컨대 김여정의 ‘3년 전 봄날’ 담화는 평양의 세 가지 심리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이후 새로운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을 마련하기보다는 2018년 봄이라는 좋던 과거에 얽매여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애써 무관심한 듯 했지만 속으론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고 쓸모없는 조직을 정리하면서 남한을 압박하는 못된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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